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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패장 강상용



나전칠기와 섭패

섭패는 나전칠기의 주요 재료인 전복 껍데기를 가공하는 과정이다. 그나마 나전칠기라는 말을 귀에 익은 편이다. 하지만 섭패는 문외한에게는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는 말이다. 전복 껍데기를 가공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전칠기도 뭔지 잘 모른다. 그냥 어디선가 그 이름을 들었고, 한 번쯤 사진이든 실물로든 보았던 것도 같은…….

 

나전을 풀이하면 소라 라()’, ‘비녀 전()’이라고 한다. 이 말은 한국·중국·일본에서 공통적으로 쓰이는 한자어로,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자개라는 고유어를 써 왔다. 따라서 그 만드는 일을 자개박이또는 자개박는다라고 일컫는다. 대체로 칠 바탕 위에 자개를 붙이고 다시 칠을 올린 뒤 표면을 연마하여 무늬가 드러나게 하기 때문에 나전에는 으레 칠이라는 말을 붙여 나전칠기라고 쓰는 것이 상례이다.

 

우리나라의 나전칠기는 일반적으로 목제품의 표면에 옻칠을 하고 그것에다 한층 치레 삼아 첨가하는 자개무늬를 가리키며, 그런 점에서 목칠공예에 부수되는 장식적 성격을 띠고 있다. 나전기법은 중국 당나라 때에 성행하였으며 그것이 우리나라와 일본에 전하여졌을 것으로 보인다. 그 전래의 초기에는 주로 백색의 야광패(夜光貝)를 사용하였으나 후대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청록빛깔을 띤 복잡한 색상의 전복껍데기를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에 이미 나전칠기를 제작하였다. 그것을 입증할 만한 유물로는 통일신라 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나전단화금수문경(螺鈿團花禽獸文鏡, 국보 제140, 호암미술관 소장)이 옛 가야지방에서 출토되었다. 뜻밖이다. 꽤 오랜 역사를 지닌 것이로구나.

 

섭패장 강상용이 말하는 섭패의 과정

섭패 과정은 나전칠기를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과정이자 토대이지만, 사람들에게 주목받지 못한다. 그런 까닭에 2007, 40년이 넘는 세월을 나전칠기의 주원료인 섭패(자개패)에 바친 섭패 기술자 강상용 씨(66)가 노동부에서 지정한 섭패 부문 기능 전승자로 선정됐을 때, 그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노동부지정 제2007-4섭패장부문 기능 전승 지원 대상자로 선정된 강상용 씨는,

선조들의 고유한 문화 유산인 섭패 가공이 이제야 인정받게 돼 너무 기쁩니다. 남은 인생을 자개공예 발전을 위해, 전복껍질과 함께 보내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섭패는 나전칠기의 주요 재료인 전복의 껍데기를 단순히 가공하는 것이 아니라 전복의 수집에서부터 선별, 세척, 갈기, 절단 및 제단, 광택, 선별과정을 통틀어서 말한다. 특히 섭패의 절단과 제단, 광택작업은 고도의 기술력을 요한다고 한다. 강상용 씨는 섭패 가공업에 종사한 지 40년이 넘게 나전칠기 뿌리 속에서 살아 숨 쉰 섭패 가공계의 산 증인이다. 그는 현재 경남 고성군 죽동마을에서 서울공방을 운영하며, 서상-여수 간 뱃길이 열린 서상항에서 나전칠기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김효문 작가와 함께 공예품 판매장을 꾸려가고 있다. 그리고 또 한 명, 섭패 기능을 배우고 있는 수제자 이현욱 씨가 있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섭패장에 오른 강씨는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섭패에 청춘을 바쳤다. 경상남도 창선 적량에서 태어난 그는,

남면 맛자락도 미조 대지포도 갔다. 전복껍데기 구하러 노상 다녔던 곳이 고향 남해라며 언젠가 고향인 창선 적량마을을 자동차로 돌면서 전복과 나전칠기의 아름다움을 모두에게 알리고 싶다고 한다.

 

전복과 나전칠기의 아름다움을 지금 볼 수 있는 곳이, 서상항의 나전칠기 공예품 판매장이다. 이곳은 그야말로 별천지다. 보통 사람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 전복 껍데기인데, 귀한 보석 다루듯 잘 정돈해 유리전시관 안에 따로 보관해 두고 이름표까지 달아두었다.

패각이 아름다운 빛깔을 발하는 것은 탄산칼슘의 무색 투명한 결정이 주성분인 까닭에 그것이 빛을 받을 때 프리즘과 같은 색광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조개껍데기 자체의 박막(薄膜)에서 생기는 색현상도 그 발색에 중요한 구실을 하며 전복껍데기의 경우는 박막에 의한 발색이 다양하게 작용하는 본보기이다.

 

전복껍데기를 수집해 3각으로 절단해 뒷면 갈고 앞면을 간다. 그리고 광택을 내는데 우리 같은 섭패장들이 있어야만 명장들이 맥을 이어갈 수 있다는 강상용 씨.

호황기의 절반 수준으로 수요가 떨어져 큰일입니다. 동남아나 중국 등 값싼 자개패가 국내로 많이 들어오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예요. 외국산 값싼 자개를 쓰게 되면 점차 우리나라 고유의 나전칠기의 멋을 뺏기는 것과 마찬가지인데라고 말을 이었다.

 

나전칠기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도 않고, 잘 드러나지도 않는 섭패의 과정. 수준 높은 나전칠기 제작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원재료 공급자인 섭패 가공도 중요하다. 섭패는 단순한 기능이 아니다. 빛의 반사 각도를 오랫동안 연구하고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영롱한 빛깔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란다. 오묘하다고 할 만하다. 그래서 섭패 기능장이 있는 것이로구나.

 

하지만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섭패 가공에 대한 기능을 인정해주는 제도가 없어, 이에 대해 꾸준히 정부에 탄원서를 냈었다고 한다. “그 결과 2007년도에 우리나라 최초로 섭패 기능장으로 선정되는 인내의 결실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에 강 씨의 동갑내기 부인인 배금엽 씨는 말한다.

 

국회위원도 잘난 대통령도 때가 되면 바뀌고 얼마나 그 숫자가 많아요? 하지만 국가에서 섭패 기능 전승자로 인정해준 건 우리 이이뿐이에요.”

하지만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한다. 차에서 잠을 자고 밥 먹는 게 다반사였고, 멀리 가면 한 달 내내 떠돌아야 했다고 한다. 이 말은, 40년 넘게 떠돌았다는 뜻이다. 국내뿐 아니라 미국에 있는 아발론까지, 전복을 수집하러 혼자서 비행기를 탄 것만 해도 여섯 번이나 된다고 한다.

 

눈물과 고난의 나날들, 그래도 여전히 섭패장 강상용 씨에게 지겹지 않았던 섭패 작업. 전복 껍데기가 지는 영롱한 아름다움을 꼭 한번 고향 사람들과 나눌 수 있으면 족하다고 한다. 서상항의 공예품 판매장에 손님들이 북적이지 않아도 좋은 까닭도 거기에 있다.

한국의 유산 김은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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