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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공예가 강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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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의 문화

아주 오래된 풍경도 아니다. 설핏 구미호가 나오는 옛이야기 속 풍경도 같지만, 돌아보면 어릴 적에도 보았던 풍경이다. 동네 아재 둘이 처커덕처커덕 소리라도 맞추는 듯이 가마니를 짜던 모습이나, 멍석에 나락을 말리던 풍경, 시제를 모시고 나서 아버지가 싸오신 짚 끄렁이, 새참을 날라 오던 엄마의 머리 위에 놓여 있던 똬리. 몇 리 길을 걸어서 학교에 오던 친구들 중에는, 겨울이면 지푸라기로 새끼줄을 꼬아 신발을 칭칭 감아오던 아이도 있었다.

짚으로 만든 것들은, 짚을 꼬는 갈라진 손, 거북이 등 껍질 같은 그 손을 바로 떠올리게 한다. 짚과 풀은 이 땅에 인간이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요모조모 쓰여 온 것으로, 돌이나 청동기, 철기보다 훨씬 두루두루 쓰여 왔다. 손만 있으면 지푸라기가 집 한 채로 둔갑할 수도 있고, 옷이 되기도 하고, 농사일에 쓰는 도구가 되고, 줄이 되고........ 원재료 이외에는 달리 필요한 것이 없어 아직까지도 그 생명력을 이어오는 것이리라. 또한 먹고, 자고, 입고, 노는 데 쓰이는 것들을 죄다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도 짚과 풀의 쓸모란 위대한 것이었다.

농경사회에서 짚이란, 그야말로 요람에서 무덤까지함께했던 물건이었다. 아기를 낳는 자리에는 삼신짚을 깔았고, 아이가 태어나면 짚으로 금줄을 엮었다. 마을 제사를 지낼 때에도 동구 밖에 금줄을 쳐서 밖에서 들어오는 잡귀를 막았다.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멍석에 말아 땅에 묻었다.

짚은 탄생에서 죽음까지, 상징적으로 우리를 지켜보았던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널리 퍼져 있는 것이었다. 아직도 시골에서는 정월 대보름이면 볏짚을 꼬아 줄다리기 줄을 만듭니다. 남자 편과 여자 편으로 편을 갈라서 줄다리기를 하고 이 줄을 당산에 감아, 당산에 옷을 입힌다’. 여자 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믿음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여자 편이 이기게 하는데, 놀이와 원시적인 신앙이 깊게 얽혀 있는 듯하다. 당산의 옷뿐 아니라, 사람 옷 가운데서 비 올 때 입는 도롱이도 짚으로 만든다. 그리고 짚신을 삼았다.

이렇게 짚을 떠올리면, 줄줄이 이어져 나오는 것들이 참 많다. ‘짚의 문화라 일컬을 법한 이 풍경은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살아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비닐’, 검은 봉지와 플라스틱의 시대다. 마트에 쌓여 있는 플라스틱들, 집안 곳곳에 놓여 있는 플라스틱들, 아이들 놀잇감도 플라스틱 일색이다. 짚으로 만들어 쓰던 수고로움이 없어져서 좋다는 어르신들 말대로 편한 세상이 되었다. 짚을 써서 만든 생활용품이나 농기구가 갖는 소박함, 아름다움은 검은 봉지나 플라스틱 용기와는 견줄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참 멋과는 거리가 멀게 되었다.

 

짚공예가 강태생 옹

200210월 짚공예 부문 대한민국 기능 전승자로 선정된 심당(心堂) 강태생(姜泰生) (84)은 한 평생 전통적인 방법으로 짚 공예 외길을 걸어왔다. 그런데도

누구나 보면 할 수 있지. 새끼 꼬는 일인데... 이건 기술도 아니지. 그래도 전통을 잇는다는 것은 중요하지.”

라고 말한다.

시골에 살다보면 어릴 때부터 어른들 어깨 너머로 보고 배우는 것이 새끼 꼬는 거지. 뭐 따로 배우고 말고 할 게 있나. 일제 시대에는 강제로 시켜서 지겨웠지. 군수물자에 쓴다며 하루에 가마니 300장씩 쳤으니까.”

그렇다. 많은 어르신들이 어릴 때 어른들 어깨 너머로 배워 익혔던 기술이다. 강태생 옹은 부농은 아니었지만 밭과 논이 다른 사람들보다 많았던 아버지가 일이 끝난 밤마다 짚으로, 곡식을 퍼 담아 옮기는 데 사용하던 삼태기를 만드는 것이 신기해 아버지 곁에서 새끼를 꼬는 등 간단한 일을 도와주었던 것이 짚공예 외길을 걷게 된 동기가 됐다.

강 옹은 1925년 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쌍정리에서 태어난 후 계속 고향에서 생활하고 있다. 5대째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그가 짚공예 전통 살리기에 본격 나선 것은 지난 1971년이었다. 가마니, 돗자리를 비롯해 이런저런 것들을 만들었다. 낯선 이름들의 그것들을 한 번 불러보면, 둥구니, 삼태기, 두트레, 미투리, 닭둥우리, 도롱이........이름들이 모난 구석 없이 둥글둥글하다. 둥구니, 또는 둥구미는 바구니처럼 곡식이나 채소 따위를 담는 데 쓰이는 그릇으로, 짚으로 둥글고 울이 깊게 결어 만든다. 삼태기는 두엄이나 재와 같은 거름을 담아 허리춤에 끼고 논밭에 뿌릴 때 쓰고, 곡식을 퍼 담거나 흙 · 모래 · 자갈과 같이 흩어 지기 쉬운 물건을 담아 나르는 데도 사용했다. 두트레 방석은, 짚으로 엮은 둥글고 두툼한 방석으로 쥘 수 있도록 한쪽에 고리를 달았으며, 주로 독을 덮는 데에 쓰며 깔고 앉기도 한단다.

스무 살부터 7년 동안 속리산에 있는 목공 전습소에서 목공예 기술을 배운 강 옹은, 돗틀, 바디 등 10여 가지의 짚공예품 제작 도구를 복원하기도 했다. 돗자리나 가마니 등 짚공예품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작업대인 바디를 강 옹이 손수 제작했는데 강 옹의 바디 제작기술은 국내 유명 박물관 관계자들과 산업인력관리공단 관계자로부터 전국에서 유일하게 전통을 그대로 복원하고 있다는 평을 얻고 있다.

짚공예품 제작기술도 중요하지만 짚공예 보급을 위해서는 제작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오래 전부터 자신이 직접 틀을 제작해 마을 경로당에 무료로 나눠주었다. 짚공예품도 필요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었다. 짚공예에 대한 한없는 애정이 있어서, 아무 대가 없이 나누어 줄 수 있었을 터이다.

고령에도 굴하지 않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20여 평 남짓한 작업실에서 짚을 이용한 공예품 만들고, 짚 공예를 만드는 데 필요한 짚이나 띠풀은 주변에서 구하고 왕골은 직접 자신의 밭에 재배한다. 강 옹의 작업실 옆 20여 평의 창고에는 100여 개의 고드랫돌(발이나 돗자리 따위를 엮을 때에 날을 감아 매어 늘어뜨리는 조그마한 돌)을 넘겨 수만 번의 손길을 거쳐야 완성되는 지석자리를 비롯해 곡식을 담아두는 통가리와 돗자리, 여치집, 소 신발 등 50여 종의 수백여 짚공예 작품이 가득 차 있다. 이 창고에는 옛 생활용품 뿐만 아니라 디자인이나 실용성이 우수한 핸드백과 미니 지갑 등 현대 생활용품도 있다

 2002년 정부로부터 전통 짚공예 기능 전승 보유자로 선정됐으며 작업실 옆 부지에 자부담 4천만원과 보조 5천만원 등 9천만원의 사업비를 들여 강 옹의 호를 딴 심당 짚공예 연구소라는 50여 평의 전통 짚 공예 연구소를 건립했다. 이곳에 삼태기를 비롯해 가마니, 쇠덕석, 통가리, 누에섬 등 100여 종의 전통 공예품 300여 점을 전시하고 짚공예를 직접 해 볼 수 있게 하였다.

2004년에는 짚공예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이 책은, 사진으로 보는 심당 짚공예, 서민생활과 밀접한 짚공예, 짚공예품 배우기 등 주제별로 내용을 나누어 일반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다. 짚공예 부문은 집의 지붕 가운데 있는 높은마루, 중마루, 용마름이라고 불리는 용마루를 비롯해 옛 조상들의 숨결과 생활상이 살아있는 금줄, 망태기 등 60여 종의 짚공예품이 사진과 함께 설명돼 있다. 목공예 부문은 음각 혹은 양각의 문양이 있어 떡에 찍으면 아름다운 문양이 새겨지는 떡살을 비롯해 다식 무늬가 각기 달라 입맛을 절로 돋구는 다식판 등 10종의 목 공예품이 상세히 수록돼 있다. 그리고 짚을 이용해 만든 옛 물건들의 쓰임새와 유래가 자세히 설명돼 있고 새끼 꼬는 방법부터 두트레방석 등 짚을 활용한 생활용품 만드는 방법까지도 쓰여 있다.

한편 2011년에는 충북 음성군 원남면 상당1리 윗행치 마을에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생가에 가마니와 삼태기, 약초바구니, 돗자리, 맷방석, 닭둥우리, 망태기 등 20여 점의 공예품을 기증했다. 그전부터 사재를 털어 매년 20여 명의 중·고생들에게 효도장학금을 주고, 짚공예 외에도 목장승 60여 개를 만들어 마을 곳곳에 세우는 등 전통계승 노력을 기울여 충북도 노인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었다. 한학에도 조예가 있는 그는 예절교육과 봉사활동에도 앞장서고 있으며, 전통예절교육서를 펴내기도 했다. 1997년부터 성균관 전학을 맡아 효()에 관한 강의를 하여 지역을 발전시킨 공로로 1982년 내무부장관상, 1997년 복지부장관상, 2003년 음성군민대상을 수상하였다.

 

밀려나고 잊혀지는 것들

마을에 단 하나 있던 초가에 불이 났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몇 번인가 불 구경을 했지만, 그 때만큼 선명하고 충격적이었던 적은 없었다. 순식간에 깡그리 다 타버려서, 어린 내가 보기에도 사람이 깃들어 살던 곳이 저렇게 허망하게 사라지나싶었다.

 

초가가 손 쓸 틈 없이 불 타버린 양, 우리의 짚 문화도 짐짓 없었던 것처럼 잊혀지고 있다. 진통 짚공예의 외길을 걸어온 강태생 옹도,

사실 우리 자식들도 쓰지 않아. 요즘 좋은 게 보통 많아. 기능전수도 중요하지만 적은 돈 받고 누가 선뜻 배우려고 하나. 그래도 장맛 내는 데는 볏짚만한 게 없는데......”

라며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농업과 농촌이 막다른 곳에 이르고, 서구적인 생활양식으로 짚공예품은 설 자리를 잃은 지 오래다. 가마니와 돗자리를 치는 데는 하루 정도 걸리고, 지석자리는 100여 개의 고드랫돌을 넘겨 수만 번의 손길을 거쳐야 완성된다. 현기증이 날 만큼 빠르게 돌아가는 우리 시대와는 너무도 멀리 있는 세계다.

하지만 자연의 가치, 느림의 가치 등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듯이, 조상들의 생활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긴 전통 짚공예도 그 가치를 주목받고 있다. 지구라는 별을 생각하면 짚은 우리가 되돌아가야 할 오래된 미래다. 그 자리에 기력이 다하는 날까지 전통 짚공예품과 함께 하겠다라고 말하는 강 옹은 좋은 길라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한국의 유산 김은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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