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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러하듯 맺고 풀기를, 매듭 전승자 차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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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의 역사

일연스님이 쓴 <삼국유사> 경덕왕(742-746) 조에 왕이 돌날부터 왕위에 오를 때까지 항상 부녀(婦女)의 짓을 좋아하여 비단주머니 차기를 좋아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삼국시대부터 비단주머니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기록이다. 또한 주머니에는 끈목과 매듭이 필수적으로 있어야 허리에 달 수 있으므로 주머니에 달린 끈목과 매듭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 밖에 그 시대 여러 벽화그림에서 비단옷으로 보이는 그림들과 끈 장식들에서도 끈목의 기법이 보인다. 백제 또한 관복에 자색, 검은색, 적색, 푸른색, 황색 띠로 품계를 나타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중국 왕실과 고려 왕실 사이 혼인으로 많은 문화교류가 있었고 이것은 특히 혼인 때의 여자들의 준비물인 의류침선, 장신구류가 활발히 오고 갔을 것이다. 그 한 예로 고려 때 수도였던 송도(松都), 지금의 개성(開城)에는 혼인 때 신부가 네모난 머리장식을 하고 술과 칠보로 된 귀걸이를 했는데 이것은 중국신부가 결혼 날 쓰는 머리장식과 매우 흡사함을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정자상감 음각모란문매병(12c)에 진사로 문양을 그렸는데, 네모난 보자기 끝에 매듭과 술이 장식된 그림을 보아도 고려시대의 매듭이 생활에 얼마나 보편화되어 있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조선 초기의 매듭은 문헌으로 알 수 있는데 세종 조의 실록에서 매듭의 도해를 볼 수 있다. <세종실록> 4132 오례(五禮) 중 가례서례(嘉禮序禮)에 매듭의 도해가 많이 있다.

()의 도해와 일산에서도 술 장식의 그림을 볼 수 있지만 특히 국악기에 매듭유소가 많이 보인다. 해금과 박의 유소에는 국화매듭과 생쪽매듭을 번갈아 맺고 그 끝에 짧은 딸기술 1쌍을 장식했는데 매듭과 술의 전체길이는 박 길이의 두 배쯤 되게 만들었다.

 

조선 중기 이후의 매듭은 고회화로 그 면목을 다시 볼 수 있는데 김홍도(1745-1815?)의 신선도(神仙圖)에서 보이는 당나귀 그림의 앞장식에 딸기술로 보이는 술이 한쌍 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초기의 <세종실록>에 있는 딸기술보다 길이가 많이 길어지고 술도 탐스러워진 것을 알 수 있다.

 

조선 말기 기록을 보면 대전회통(大典會通) 공전(工典)에 끈목(多繪)을 짜는 장인(匠人)을 다회장(多繪匠)이라 했다. 일정한 수의 장인을 궁사(宮舍)에 예속시켰으며 한성(漢城) 내궁 (內宮)과 사()에 속해 있는 경공장 (京工匠)과 지방 관아(官衙)에 속해 있는 외공장 (外工匠)으로 나누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생사(生絲)에서 시작하여 합사(合絲), 연사(鍊絲), 염색(染色)의 공정을 세분하여 합사장(合絲匠) 10, 연사장(練絲匠) 75명을 따로 두었고 홍염장(紅染匠), 청염장(靑染匠)을 구분해 두었다. 이것은 홍염과 청염은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즉 홍색염은 비단실에 빨리 염료가 먹어 들어가지만 청색염은 그 반대로 잘 먹지 않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상방정례(尙方定例, 상의원(尙衣院)에 규례(規例)를 적어놓은 책)에 후수, 광다회, 봉두매듭, 세조대, 오색다회 등 광실의 양과 빛깔의 기록도 보인다.

이것으로 우리는 끈목을 만드는 공정의 복잡함과 더불어 수요또한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창덕궁에 소장된 실물을 토대로 어연을 재현한 사람은 매듭 장인인 차명순 선생(57). 30여 년동안 매듭에 매달려온 그가 가마 재현에 뛰어든 것은, 어연이야말로 전통 매듭의 총집합체라는 생각에서였다.

 

어연의 안팎은 수많은 매듭과 술로 장식됩니다. 어연의 화려함과 장중함을 보여줄 수 있는 관건은 매듭입니다. 게다가 국내에 가마를 재현할만한 전문가가 없어 매듭을 하는 제가 나서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고종황제 가마 '매듭의 집합체'

선생이 어연을 재현하는 데 걸린 시간은 3. 가마에 관한 문헌 조사, 창덕궁 소장 어연 실물 조사, 기본 설계에 1, 실제 제작에 2년이 들어갔다. 가마는 소목 장인(가구 등 목제 생활 용품을 만드는 장인)에게 의뢰해 만들었다. 선생은 매듭과 술을 만들어 장식했다.

 

어연 안팎에 장식되는 매듭과 술은 280여 개. 선생은 어연 덮개의 네 귀퉁이를 봉황으로 장식하고 봉황의 입에 고리를 만든 뒤 매듭장식을 매달았다. 이 매듭을 대붕유소(大鵬流蘇)라 하는데 그 길이가 118cm. 가마 사방에는 천으로 처마를 달고 처마 밑엔 오방색(, , , , )의 술을 달아 화려하게 꾸몄다. 매듭이 워낙 손길이 많이 필요한 것이어서 최근 1년은 매일 아침부터 새벽까지 한자리에 앉아 맺고 풀고를 반복했다.

한국의유산 이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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