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팩·찾기
08.24 (목)
2012 - 2018 『한국의 유산』발굴ㆍ조사 사업
next
prev
고양시 홍보는..
김화영(국가상..
김민철(국가상..
고양시 홍보는..
윤판석(국가상..
임종남(국가상..
한창헌(국가상..

마음을 빗어내는 빗, 얼레빗 이상근 장인

fiogf49gjkf0d





장인은 단지 빗으로 장인이 된 것이 아니다. 글도 그림도 너무나 섬세함을 지닌 채 작품으로 만들어 내기에 가능한 일이다. 장인이 쓴 얼레빗 전에 부치는 글을 보면 확연히 드러나는 사실이다. 첫 번째 개인전을 하면서 장인은 스스로 자신이 제작한 얼레빗에 긴 헌시를 바쳤다. 빗에서 생명의 태동을 느꼈기 때문이다. 작품을 제작할 대마다 자르고 깎아내는 대추나무에 대한 사죄이기도 하다.

 

근 백여 년 살다 보니 기력만 쇠진하여 대추 몇 톨 안 열리니, 한 심술이 촉새입을 하고 다가와 톱으로 내 허리춤을 동강 내더라 - 거참! 요행. 다행. 아궁이 신세 면하는가 - 저 인간에게 등덜미를 잡혀 이 몸 이리 켜고, 저리로 마름질하며 분주히 살잽이톱을 놀리누나. 어허라 - 몸뚱이는 하나요, 팔다리는 수십이라 이쪽저쪽 도려내더니, 영락없는 얼레빗 자태구나.’ - ‘얼레빗전에 부치는 글중에서

 

빗으로 만들어진 세상

 

반달 모양으로 자른 대추나무 토막 위, 연꽃 위에 올라앉은 청개구리가 하늘을 빤히 올려다본다. 소나무 우거진 무릉도원에 사슴이 노닐고, 붉은 연꽃이 안개 속에 피어오른다. 장미가 붉게 피어나고 학들이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빗 안에서 만들어지는 아름다운 세상이다.

 

빗살이 성글어 붙여진 이름. 얼레빗.

생김새가 반달처럼 생겨 월소(月梳)’라고도 불렸다. 이상근 장인에 따르면 조선시대 기생 황진이가 지은 시에도 얼레빗이 등장한다고 한다. 직녀가 몸단장하며 견우를 기다리다 화가 난 나머지 얼레빗()을 하늘에 내던졌는데, 그 빗이 허공에 걸려 반달이 됐다는 내용이다.

긴 머리를 빗을 때는 반달빗, 귀밑머리를 정리할 때는 작은 면빗, 살짝 삐쳐 나온 머리를 정리할 때는 실적밀이. 머리 모양과 부위에 따라 다른 빗을 만들어 사용했으니 어느 민족이 이토록 섬세했을까.

 

이상근 장인은 우리나라에서 한 명밖에 없는 얼레빗 장인이다. 6대째 대를 이어온 장인 가문의 후손답게 그는 몸도 마음도 온통 대추나무로 만들어내는 얼레빗뿐이다.

 

장인은 200년 이상 얼레빗만 만들어오던 집안에서 태어났다. 선대에선 공예 솜씨가 좋아 공조참의 등 벼슬을 지내기도 했다. “일제의 단발령 이후 빗장이는 시대의 풍랑 속에 온갖 고초를 겪으며 먹고살 길조차 막막한 직업이었다. 당연히 아버지는 가업을 물려받는 것을 원치 않았고 어깨 너머 무엇인가를 하나씩 익혀가는 아들의 손재주를 알아본 선친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고 전한다.

 

강원도 태백에서 고교를 졸업한 뒤 '작지만 창의력이 표현되는' 얼레빗 만들기에 몰두했다. 1981년 계룡산 갑사 부근으로 이사했다. 이곳은 얼레빗 목재로 많이 사용되는 대추나무 살구나무가 흔하다.

 

그는 빗을 만들 때 살 가르는 살톱, 살 다듬는 살잡이 등 대대로 물려받은 도구를 쓴다. 기계를 쓰면 그만큼 예스러운 멋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처음 대학을 졸업한 그는 아버지의 소원대로 교사가 되었지만 40일 만에 그만두고 다시 나무를 잡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결국, 전국공예품경진대회에서 얼레빗을 출품하여 상을 받자 아버지는 세상이 좋아지니 빗으로도 나라에서 상을 주는 구나하는 말로 더 이상 아들의 길을 반대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장인은 외길이다.

 

2003, 그는 국가지정 민족고유기능 전승자로 선정되어 명인(名人)’으로 지정 받았고 눈떠 있는 시간은 온통 빗 생각뿐이다.

 

머리모양에 따라 용도가 각각 다른 얼레빗

 

우리나라 빗은 크게 촘촘한 참빗과 성근 얼레빗으로 나뉜다. 다시 모양과 용도에 따라 참빗은 네 종류로, 얼레빗은 여섯 종류로 나뉜다. 긴 머리에는 반달빗, 상투에는 상투빗, 가르마에는 가르마빗 등 요즘 말로 헤어스타일에 따라 각각 다른 빗을 만들어 사용했다. 뿐만 아니라, 혼례용 빗, 회갑용 빗, 과거용 빗 등 쓰는 사람의 용도에 맞춰 빗을 제작했다.

 

빗은 대개 80~100년 정도 된 대추나무를 사용한다. 단단하고 빛깔도 검붉어서 장신구로 사용하기에 좋기 때문이다. 얼레빗에 사용하는 나무는 제일 추운 날 자른다. 그래야 결이 치밀해져 빗을 만들기에 적합하다. 이를 목재 제재소에서 켠 뒤에 몇 개월 동안 자연 상태로 방치한다. 비도 맞고 바람도 쐬면 변형이 이루어지며 결이 삭는다. 그 다음에 음지에서 건조했다가 빗을 만든다.

 

각종 공예대회에 얼레빗을 출품하여 받은 상만 해도 셀 수가 없을 정도이다. 이젠 어떤 모양의 나무토막이든 다 소화할 정도로 우리 문양에 대해서만큼은 자신감이 있지만, 아직 그의 마음에 쏙 드는 빗은 없다.

 

그가 만들고 싶은 빗은 우리 조상들이 붙여준 이름에 걸맞은 마음을 빗어낼 수 있는 빗이다. “만들 때는 정말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이틀 후에 보면 아니다. 내 마음이 교만해져 있다는 얘기다. 시골 노인네들이 무심코 그냥 만들어내는, 편안함 가득한 빗을 만들고 싶다. 그 빗을 사용하는 사람을 위해 온전히 내가 낮아질 수 있어야 한다.”

 

이 명장은 빗을 완성하면 자신의 머리부터 서너 번 빗어 본다. 오른손잡이인 그는 "시험 빗질 때문에 오른쪽 머리카락이 왼쪽보다 윤기가 더 나고 숱도 더 많다"고 말했다.

한국의 유산 이소정 기자

▣ 댓글 게시판
※ 먼저 로그인을 하신 후에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댓글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하위 댓글이 있을 경우 함께 삭제됩니다.
비밀번호  
 
[댓글달기] 작성자 ※ 먼저 로그인을 하신 후에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