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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염 한광석




천연염색은 언제부터 시작 했을까?

색깔은 문명의 발달과 함께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고대인들은 악마를 쫒거나 질병, 해충, 등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염색된 천을 몸에 걸치거나 몸에 색을 칠하였다.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사회적 계급이나 빈부의 차이를 나타냈고, 종교적 또는 민족적 상징이나 감정의 표현에 색이 이용되었다.

인류는 오래 전부터 자연물에서 추출한 천연염료를 사용하면서 염료를 발달시켰다. 신석기시대 이후, 의복의 착색에 광물이 사용되었고, 5,000 - 6,000만년 전에는 식물의 화분, 과실, , 줄기 등의 즙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지방에서는 쪽풀에서 감색의 염재인 인디고를 이집트에서는 꼭두서니의 뿌리에서 추출한 빨간색, 페니키아 지방에서는 뿔고동의 조개에서 보라색을 얻었다. 3,000년전에는 아라비아와 인도지방에서 나무에 기생하는 연지충으로 홍색의 염료가 만들어졌다. 페르시아 및 근동에서는 수목 등에 기생하는 패각충에서 보라색 염료를 추출하여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 16세기 경에는 인디고, 레드우드, 등의 갈색염료가 동양에서 서양으로 전파되고, 17세기경에는 서인도제도의 연지충, 로그우드 등의 염료가 사용되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백의민족이라 하였으며 지위의 높고 낮음을 관복의 색으로 구분하였다. 가장 고귀한 색을 자색으로, 자색은 지치에서 얻었고, 다음이 잇꽃, 소방목의 붉은 색, 치자, 황백, 울금 조개풀 의 노란색의 염색을 하였다. 식물로 얻어진 색은 음식에도 이용되어 송화다식, 모시잎을 이용한 초록색 송편, 보라색의 갓김치 등이 그 예이다.

 

쪽에 미친 한광석

희지만 불투명한 무명에 쪽이 올라앉으면 어느 순간에 옷감이 투명해진다. 거기서 말리고 담그기를 거듭하면 투명하던 쪽빛 무명은 어느새 하늘도 되고 바다도 된다. 거듭하기도 지쳐 질리고 물리도록 무명에 쪽이 앉으면 물 깊이보다 푸름이 더 깊어 버린 인당수 물이 그러랴 싶도록 검디 푸른 쪽빛은 아예 시퍼런 한이 된다.

밭 둔덕 쪽풀을 "한여름 더위에 썩다가 지치도록" 발효 시켜야 얻는 시리게 맑고 푸른 그 색은 마땅히 표현할 말이 없어서 그냥 풀 이름을 따라 쪽빛이라고 부른다. 서양 말은 그 색을 '인디고 블루'라고 천박스럽게 밖에는 쓸 도리가 없다.

쪽빛은 화학 염료처럼 천에 강제로 색을 먹이지 않고 천의 결을 따라 자분자분 색을 들어앉힌다. 색이 현란하면 그 색에 현혹되어 옷감은 안 보이는데 그의 쪽빛 옷감은 진하든 연하든 올도 보이고 색도 보인다. 자연의 색은 눈을 거스르지 않기 때문이다.

 

기자는 전시장의 천들을 희한하게 바라보고 한광석은 그런 기자를 희한한 눈으로 바라본다. 결코 희한하지 않은 그의 일상인 쪽을 희한하게 바라보는 세상이 그에겐 희한할 터이다.

 

세상과 겉도는 듯한 그의 말과 그의 생각은 쪽염의 경지가 어디부터인지를 대충 짐작케 한다. "(쪽옷감에서) 돈이 보이면 그 때부터 색이 안 보인다"는 그의 말은, 천연 염색입네 하면서도 실제는 자연의 정성이 아닌 자연을 가장한 허위의 인공 색을 자연에 보태서 보다 많은 이윤을 남기려는 많은 천연염색 표방자들에게 따가운 질책이 될 것이다.

한국의 유산 이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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