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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제철 이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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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전통 철 제조

 

흔히 떠올리는 거대한 용광로와 거기서 흘러나오는 뜨겁고 끈적끈적한 철은 우리나라 고유의 방식이 아니다. 이는 구한말 서양 문물이 물밀 듯 밀려오면서 서서히 자취를 감추다가 일제 침략 이후 완전히 명맥이 끊긴 우리 고유의 전통 철 제작 방식이다. 이는 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서구식 용광로를 일제강점기 이후 들여와 쓰기 시작한 것. 그전까지 철을 만드는 일은 도자기를 굽는 것처럼 장인들의 몫이었다. ‘제철(製鐵) 장인의 모습이 어쩐지 낯선 것은 철과 그 제품을 공들여 만들던 이들이 단 한명도 남아있지 않고, 제자를 키우거나 비법을 전수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전통 철 복원 도검 장인 이은철씨

 

이런 열악한 상황에 가르쳐줄 스승도, 제대로 된 자료도 없는 전통 철 제조법을 복원하고 백련검을 부활시켜 준 장인이 있다. 경기도 양주의 집에 손수 설치한 용광로에서 작업하며 묵묵히 전통 철을 만들어내는 이은철씨. 일제강점기 이후 명맥이 끊긴 전통 철 제작을 20여 년간 연구하고 보검을 만드는데 열중하였다. 그가 만드는 검은 현대적인 공법으로 만들어 낸 쇠를 그라인더로 갈고 닦아 만든 검이 아니라 철광석과 참숯을 점토로 만든 용광로에 넣어 철을 뽑아내고 이 철을, 수백 수천 번 두들겨 만든 검이다. 몇 년 전 이은철씨가 전통방식을 통해 철을 만들어냈을 때 대학교수나 철 관련 연구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100여 년이 넘게 단절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자료 하나 남지 않아 어느 누구도 전통적인 방법으로 철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손은 20년이 넘는 불 작업으로 데이고, 수 없는 두드림에 의해 굳은살이 잡혔다. 그는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철, 그리고 칼에 평생을 바친 것일까?

 

맥 끊긴 전통제철, 도검

 

이씨가 어릴 적부터 그림과 공작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이씨가 칼과 철을 만들게 된 사연은 다소 엉뚱하다. 7살 때 작은 아버지가 연극 소품으로 만든 멋진 모형 칼을 다른 이에게 줘버린 충격적 배신을 겪고 난 후 오기로 칼을 만들기 시작, 그 후 멈추지 않았으며 처음에는 나무를 깎아 장난삼아 만들었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작업은 점점 진지해졌다. 칼을 만들다 보니 관심이 재료인 철까지 옮겨갔다. 박물관에서 본 조상들의 칼이 지금의 철과 다른 색상과 질감을 지녔다는 사실이 그를 자극했다. ‘그렇다면 저 철은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은 곧 아무 곳에서도 구할 수 없다는 절망적 답을 만났다. “대량 생산이 가능한 제철소가 들어오면서 가격 면에서 경쟁력을 갖지 못한 전통 철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무인(武人)과 칼을 천하게 여겼던 붓의 나라였기에 국가적 차원에서 이를 지키려는 시도도 없었던 거죠. 그렇게 전통 철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더군요.” 어릴 적부터 그림과 공작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그는 지난 80'계간 미술'이라는 책자에 '전통제철과 도검 제작 기술이 단절됐다'는 내용을 접하면서부터 전통제철과 도검 제작에 빠져 들었다.

" '전통제철과 도검 제작 기술이 단절됐다'는 내용을 접했을 때 내 가슴 한쪽이 텅빈 느낌 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큰 충격을 받았죠." 이은철 씨는 어려서부터 가족과 친구들 모든 사람들이 나를 당연히 화가가 될 사람으로 취급했다. 타고난 예술가의 기질은 어려서부터 두드러졌다고 말했다. 그리고 당연하게 화가가 됐다. 타 지역에서 미술학원을 하고 있던 그는 어느 날 겨울에 석탄 난로를 피웠는데 난로 속에 망치였는지 철제품이 들어갔다. 난로 밖으로 철이 녹아 흐르는데 순간 그 솔직한 수학적 논리에 맘을 뺏겼다. 그림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가변적 상상력이 있기 때문에 가끔은 거짓이 통할 때도 있다. 그러나 철은 다르다. 철저한 수학적 논리와 진리만이 통한다. 철은 거짓이나 요령이 절대로 통할 수가 없다. 이 사실을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지금도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제철가 도검의 길로 들어서다.

 

그러나 철을 연구하기 시작한 그는 명쾌한 수학적 진리에 도달하기까지 많은 벽들과 싸워야 했다. 전통적 방식으로 만들어진 로에서 철이 성공적으로 제조됐음을 알리는쇠똥이 철철 흘러나오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예전 방식을 이어오면서 그 철로 칼, 찻주전자 같은 생활용품을 만들어 쓰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죠.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쳤습니다.”하지만 그의 뜻을 알아주는 곳은 많지 않았다. 칼을 만든다고는 하나, 팔려는 것이 아니었기에 실질적인 수입은 전혀 없었다. 집에서 물려받은 돈을 조금씩 빼 쓰면서 로를 제작하고 각종 재료를 여러 방법으로 조합했다. 실패는 이어졌다. 그의 작업에 관심을 가진 몇몇 박물관과 학자들이 제철 작업에 합류했지만 전망이 불투명하자 오래 버티지 못했다. 그렇게는 한계를 느껴 결국은 모든 경제적 활동을 접고 여주로 내려와 작업실을 만들고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갔다. 철을 만들어 내는 일은 오랜 시간의 실험과 실패에 실패를 거듭한 끝에 이룰 수 있었다. 전승해줄 어느 누구도 없었으며 문헌과 자료도 빈약했다. 오로지 수학적, 화학적 원리를 공부하고 실험하고를 반복하며 하나씩 해결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의 전통 철 제법은 일제강점기 후 사라졌고 조선시대까지 남아있던 장인들은 1980년대 이전 모두 이 세상을 떠났다. 전승도 없이....“

도움말을 줄 수 있는 이가 없어 크고 작은 사고를 많이 당했습니다. 인대가 끊어져 몇 개월 동안 작업을 중단한 적도 있었어요. 화상이나 베이는 것은 사고로 치지도 않죠.” 군소리 없이 묵묵히 돕는 아내와 단 둘이 작업을 계속한 결과 지난해 1227, 이씨는 드디어 전통 방식의 제철에 성공했다. 처음 철에 관심을 가진지 17년 만이었다. 유출제가 흘러나올 때의 감동을 묻자 나올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며 조용히 웃는다.

 

세계 최고 명검을 향해..

 

그의 작업장은 모두 전통 방법으로 손수 만든 것들로 채워져 있다. 하다못해 칼을 갈 때 필요한 물통도 나무 조각을 연결해 만든 나무 물통이다. 칼의 손잡이도 가오리 가죽으로 직접 제작한다. 손잡이에 붙이는 장식도 문양을 석고에 역상으로 조작하고 밀납으로 만든 거푸집으로 형태를 떠 청동이나 구리로 만든다. 칼에 조각으로 새겨 넣은 친필 싸인도 오랜 숙달이 필요하다. 이은철 씨는 철을 만들고 그 철로 칼을 만들고 갈고 조각하고 장식하는 모든 과정을 혼자서 다한다. 그는 일본은 전통 도검장이 300여 명 정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철저히 분업화 되어 있다. 칼 가는 것에 무슨 기술이 필요하랴 하겠지만 그 기술은 금방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고도의 기술이고 몇 백년 전의 유물을 판별해 낼 수 있는 것도 칼 가는 기술을 분석해야지만 어느 시대 어느 가문의 것인지 판별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일본의 검들은 세계적인 명품이다. 그들이 명품을 만들 수 있는 건 철저한 분업으로 자기 분야의 최고가 되고 그 최고가 모이기 때문이다. 일본에 가서 명검들을 보며 내 검이 겨우 중·상급의 검이라는 걸 확인했다. 그러나 최상급의 검으로 가는 길이 멀지 않았다는 자신감을 나는 갖는다. 부족한 부분을 알기때문이다고 밝혔다.

 

전통 제철 무형문화제 지정됐으면..

 

주몽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철기방에 모팔모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모팔모는 한나라의 강철검 제조법을 터득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며 모든 것을 거기에 바치는 열정의 사나이다. 모팔모 역의 그는 인기가 상승해 행복해 하고 있다. 그 드라마를 보면 강철검 제조법을 터득하기 위해 국가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그를 애지중지한다. 그러나 단절됐던 철 제조법과 전통 검을 21세기에 만들어낸 이은철 씨는 아직 그 공로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는 옛날 선조들의 방법을 현재에 이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건 불행한 일이다라고 말한다. 후배양성을 위한 토대는 이제 국가에서 만들어 줘야 한다. 그는 검을 한 번도 팔아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팔 생각이 없다. 만약 그랬다면, 돈에 욕심이 있었다면 이 일을 해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일반적인 장인으로 분류되기를 원치 않는다. 평생 칼 만드는 일에 전념했다는 말에 사람들은 이씨의 집이 도검(刀劍) 박물관수준이 아닐까 짐작한다. 예상과 달리 그가 가진 칼은 다섯 점이 채 되지 않는다.

칼을 쌓아두려고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절대치에 이르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죠. 완벽하지 않은 칼은 바로 부러뜨리고 설령 완벽하다 해도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바로 폐기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칼은 만드는 공정 자체에 가장 큰 의미가 있으니까요.”

이씨가 말하는 절대치는 두 가지로 나뉜다. 원료를 가장 정확하게 배합해 만들어내는 금속학적 절대치와 눈으로 보아 아름다운 공예적 절대치가 그것이다. 철 자체가 불순하면 색상이나 무늬도 거칠어지므로 무엇보다 금속학적 절대치가 우선한다는 것이 이씨의 생각이다. 일 년에 나오는 칼의 수는 4~5. 이른바 보검(寶劍)’2~3년씩 걸리기도 한다.

서양식으로 만든 철은 석탄 원료를 사용해 유황과 인이 많이 들어가 있어요. 목탄을 사용하는 우리 방식은 공정이 훨씬 복잡한 단점이 있지만 매우 깨끗한 철을 생산해냅니다. 철이 깨끗하다는 것은 곧 강하다는 뜻이죠.”

우연히 얻은 성공이 아니었기에 이제 철을 얻어내는 일도, 절대치에 달한 칼을 만드는 일도 그에게는 큰 어려움은 아니다. “저를 가장 힘겹게 하는 것은 사회의 무관심입니다. 일본만 해도 제철 장인 양성소가 있고 유명한 장인은 국보급 인사로 지정해 예우합니다. 저는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 해도 칼을 팔아본 적이 없어요. ‘칼 장수가 되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 때문이죠.” 이씨는 그의 작업을 국가적 차원에서 육성해주길 바란다고 거듭 강조한다. 만약 지금 그가 힘들어서 포기하게 된다면 어렵게 얻어낸 귀중한 결과물은 또 다시 컴컴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제철 과정은 무형문화재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는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지금까지 먼 길을 돌아 여기까지 다다른 만큼 이제는 제도권 안에서 제가 아는 것을 가르치고 전달하고 싶습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예요. 우리 것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지금이라도 국가에서 관심을 가져주세요"

한국의 유산 장선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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