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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2018 『한국의 유산』발굴ㆍ조사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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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화 이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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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승화되는 종이예술..

 

지화는 전통한지를 천연방식으로 염색해 고유한 색채를 입히고 손으로 살을 접어 모양을 만들어 낸 꽃이다. 혼례, 상례, 궁궐 대소사에 쓰였으며, 불교의식에도 상단에 바치는 꽃으로 사용되는 등 단순한 종이꽃이 아니라 관혼상제와 같은 우리의 전통의례와 삶 속에 늘 함께해온 꽃이다. 도량을 종이 꽃으로 장엄하는 일을 하는 일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아름다운 작업이다.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전국의 사찰에는 수륙재, 예수재, 영산재 등 다양한 행사를 치르면서 이러한 종이꽃이 만발했다. 생화를 구하기 어려웠던 과거에는 많이 사용됐으나 생화가 보편화 되고 조화(造花)가 보급되면서 지화 제작 방법이 점차 사라져 지화(紙花)장인들도 숫자가 줄어들었고, 최근에는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 흔적조차 찾기 힘들다. 특히 한국사회의 빠른 산업화와 서구화로 1970년대 지화 조사 당시 28종이었던 것이 현재는 10여종도 안될 정도로 많은 꽃들이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다.

 

60년 세월 지키다..

 

그 사라져가는 전통지화의 제작에 맥을 이어가고 있는 이기원씨. 이기원씨의 지화기법은 35년 만에 당신의 선친께서 배우신 그대로를 고스란히 재현해 내시는 전통지화의 원형을 보유하시고 계시는 귀하신 분이다. 이기원씨가 지화 만드는 일을 시작한 때는 8살 때부터다. “저의 부친은 동은스님으로, 일제 강점기 때 마곡사에서 출가하셨어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셨던 송암, 만봉, 벽응스님들과도 친분이 두터운 분이셨어요.”

사찰에서 내려오는 전통 지화기술을 체득하고 있었던 부친은 항상 사찰에서 각종 재 의식에 필요한 일을 도맡아 해 왔고, 일손이 모자라 아들인 이 씨에게도 맡겼던 것. “그냥 부친이 시키는 일을 했는데 저의 손재주를 인정하시더니 더 많은 기술을 전해주며 일을 시키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일을 현재까지 해 온 셈이지요.” 이기원씨는 부친은 영산재가 문화재로 지정될 때 도반 스님들이 같이 하자고 권해도 이제 생화가 판을 치는데 인간문화재로 지정받아 뭣하겠냐며 고사할 정도로 고지식한 분이었다“1979년 입적하실 때까지 남다른 지화장엄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1365일을 사찰장엄에 몰두했던 부친이 입적하고, 부친의 예언대로 생화에 밀려 지화가 사찰장엄에서 자리를 내어주자 이 씨도 더 이상 이 일로 생업을 이어가기가 어려워졌다. 그렇지만 틈틈이 사찰연 등을 제작하는 일도 함께 병행하며 지화작업을 해 왔다.

 

멈추지 않을 바람.

 

근래에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명제 아래 다양한 전통공예가 되살아나고 있다. 그러나 지화는 역사성뿐만 아니라 예술성, 창조성에 있어 그 뛰어남이 우월함에도 불구하고 소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기원씨의 바람은 전통 지화작업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일. 그래서 부처님 도량에 오래 유지될 수 있도록 촛농을 먹이는 작업을 비롯해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제 남은 여생동안 지화가 필요한 곳이 있다면 언제라도 달려야지요. 아울러 이 전통기술을 후학들에게 제대로 전하고 싶습니다.”

한국의 유산 장선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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