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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풀공예 임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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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활해 온 짚풀..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짚풀과 함께 생활해 왔다. 옛날 임산부가 뜻하지 않게 집에서 또는 밖에서 몸을 풀 때 짚풀을 깔고 몸을 풀었을 정도로 우리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바깥에서는 바닥의 축축함을 피하고 산모에서 나오는 분비물이 잘 빠지기 위함이었지요. 짚풀의 따스함이 불안한 산모의 마음을 추슬러주는 역할도 했습니다. 초가삼간을 시작으로 멍석과 가마니 소쿠리 등의 역사와 함께 한 짚풀공예가 사장 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모두 공감하고 있다. 요즘 공예의 많은 부분에서 그렇듯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해있다. 짚풀공예란 벼, 보리, 밀 등 모든 곡식의 이삭을 떨어낸 줄기로 작품이나 실생활의 도구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지금에와서는 플라스틱제품이나 여러 합성제품 등으로 그 영향력을 잃어갔지만 전통생활 문화인 짚풀공예의 발굴과 전승을 통해 우리 전통문화의 맥을 잇고 발전시키는 이가 있다.

 

짚풀과 사랑에 빠지다

 

전라남도 곡성의 섬진강 자락에 있는 기차마을에 가면 마치 조선시대로 돌아간 듯한 풍경을 주는 할아버지가 있다. 흰 바지저고리 한복을 입고 상투를 틀어 올린 머리가 예사롭지 않다. 섬진강 기차마을에 명물, 새끼 꼬는 할아버지로 통하는 짚풀공예가임채지옹. 2008년 기능전수자로 선정돼 예술가로서 인정받으며, 짚에 대한 열정을 태우고 있다. 임채지옹께서는 평생 짚풀에 빠져서 사시고, 할머니 정애님 여사는 남편대신 논밭을 지키며 아옹다옹 싸우시면 51년째 살아오고 계산다는데...'돈 한 푼 안 되는, 별 그지 같은' 지푸라기 때문에 그동안 가족의 생계는 모두 아내의 몫~ 허리 필 새 없이 눈물로 땅을 일군 할머니는 오늘도 모내기를 하다 말고 작업실로 줄행랑을 치는 남편 때문에 치솟는 부아를 가라앉히질 못한다.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내 영감이기에 작업실 청소에, 도시락 배달까지 하며 은근한 내조를 자랑하는 할머니~ 그토록 질색하던 지푸라기도 따로 곱게 농사를 지을 만큼 어느새 딱~하고 미운정이 붙었다. 줄줄이 딸린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했던 빈농 시절, 생계를 위해 꼬아본 짚신 한 짝에 찌르르 운명을 느꼈다는 할아버지! 점점 사라지는 짚 문화를 되살려 보자는 욕심에 본업인 농사도 내팽개치고, 남들에게는 바보취급까지 당하면서 본격적인 '짚공예'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하는데…….할아버지의 어릴 적 꿈은 마술사였다고 한다. 또 한때는 사진작가를 꿈꾸기도 했다죠. 물론 사진기를 메고 다니는 그 폼에 반해 50여 년을 함께 살아온 미성댁을 만났으니 성과는 있었다. 그러나 도회적인 걸 마다하고 할아버지가 택한 길은 결국 가장 농촌적인 짚풀공예였다. 아마 운명이었으리랴. 그의 조부가 짚신을 만들어 팔았고, 부친 또한 짚으로 하는 일에는 빠진 적이 없었으니까요. 짚신을 만들어 팔았고, 부친 또한 짚으로 하는 일에는 빠진 적이 없었다. 풀 공예 기능전승자 임채지옹의 작업실은 온통 지푸라기와 짚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보잘것없는 짚으로 각종 생활 도구를 만든 선인들의 지혜 또한 가득하다. “이게 우리가 살던 본래 모습이에요. 곡식을 거두고 남은 짚으로 짚신이며 걸망태, 우장, 소쿠리, 수세미 등을 만들어 사용했으니까요.” 아직도 흰 바지저고리에 상투를 틀고 망건을 쓴 그의 모습은 짚풀과 그대로 닮아 있다. 이것도 전통을 보존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살짝 알려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의 보물창고 문을 연다.

이게 다 내가 만든 거예요. 자식보다 더 아끼는 내 보물단지들이죠. 모두가 우리네가 살던 옛 모습인데, 이젠 점점 사라져가고 있어 안타까운 것들이에요.” 그 속에는 그가 수년간 짚풀을 꼬아 만들어온 짚신과 멍석, 뒤주, 망태, 소쿠리, 심지어 새끼로 만든 각종 십이지신상의 동물들이 형상화되어 있다. 그리고 돈만 생기면 골동품 사 모으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귀띔해주신다.

 

마지막 꿈을 위해 .

 

작업실에 틀어박혀 밤낮으로 새끼를 꼬며 그렇게 투명한 예술혼을 불태운 지도 어언 40여 년. 소쿠리, 망태, 삼태기 등 각종 생활용품을 비롯해 호랑이, 황소, 십이지신 등 몇 백 점의 '작품'들이 그의 손을 통해 탄생되는데…….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그의 유별난 짚 사랑이 언젠가부터 나라 안팎으로 관심을 얻더니 기능전수자로 선정되며 예술가로서도 인정받기 시작한 암채지 옹!!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미명 하에 짚공예 체험관이란 그의 원대한 마지막 꿈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짚 문화를 활성화 할 짚공예 체험관을 짓는 것. 지난 시절의 어려움을 짚풀 사랑으로 털어낸 할아버지. 이제 당신 뜻을 받들어 곁으로 돌아온 큰딸과 함께 짚풀전시관을 만들어 짚 문화를 전승할 꿈에 다시 행복해진다 고한다. 51년을 한결같이, 하루에도 댓 번을 지지고 볶아도 안보면 보고 싶고 없으면 허전한 잉꼬부부의 이야기. 각자가 애지중지하는 을 지키면서도, 함께 행복해질 수 있을지. 할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은 이뤄질 것인지.

새끼 꼬고 있으면 심심할 틈이 없어요. 또 우리 문화를 보존하고 전하는 게 얼마나 보람돼요.”

한국의 유산 장선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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