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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장인 홍춘수



노인의 손은 나무껍질처럼 거칠었다. 닥나무의 뻣뻣한 껍질을 벗겨 부드러운 한지(韓紙)를 만드는 데, 평생을 바쳐온 홍춘수(洪春水.70) 옹이다. 전북 무형문화재 35호로 지정된 '지장(紙匠)' 홍옹은 58년 동안 전통 방식으로 한지를 생산하고 있다.

홍옹은 각고의 노력 끝에 최고 품질의 한지를 만들어 내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손은 흉터 투성이의 나무껍질처럼 변해 있었다. 새해 벽두 전북 임실군 청웅면 구고리에 있는 홍옹의 집을 찾았다. 한겨울 매서운 추위로 그의 집 마당에는 얼음이 꽁꽁 얼어 있었다.

100평 남짓한 마당 곳곳에는 닥나무 가지와 말린 메밀 줄기가 2높이로 쌓여있었으며. 한쪽에는 시커멓게 그을린 아궁이와 솥, 시멘트로 지은 실내 작업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을 종종 걸음으로 오가며 바쁘게 손은 놀리고 있는 홍옹은 왜소한 체격에 새하얀 머리칼, 돋보기 안경을 쓴 영락없는 `동네 할아버지' 모습이었다. "시골까지 뭣하러 오셨소"라며 기자를 맞는 말투도 느릿느릿하다.

그러나 홍옹은 이어 마당과 작업장을 돌며 한지 제작 과정을 재현하는 2시간 동안은 전혀 피로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완주에서 태어난 홍씨는 열 두살 때 처음 종이 뜨는 일을 접했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전주시 서서학동의 종이 공장에서 일을 배우면서 부터. 어깨 너머로 배운 일은 생업이 됐고, 이제는 큰사위 노정훈씨가 홍씨 뒤를 이으면서 가업이 됐다.

 

"아버지가 생업으로 종이를 만들어 내다 팔았지. 어깨너머로 자연스럽게 종이 뜨는 법을 접하게 됐는데, 이 일이 3()째 가업이 됐지" 초등학교 5학년 중퇴 학력의 그는 "58년 동안 종이가 아닌 다른 것으로 밥벌이를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홍씨가 처음 전통한지를 만들 때만 해도 일상생활에서 한지가 널리 쓰일 때였다. 홍씨는 1963년 임실군 청웅면에 청웅한지를 설립, 본격적으로 한지 만드는 일에 뛰어들었다. 색깔과 두께, 질감을 각기 달리한 맞춤형 한지를 만들어 팔았으며, 반응도 좋았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공장은 활기를 띠었지만, 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기계로 만든 한지가 등장하고 중국산·일본산 종이가 들어오면서 전통한지 산업이 쇄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지는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가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인공 재료나 화학 약품을 섞어 사용하거나 기계를 대지 않았다. 오히려 천연 재료를 활용해 한지를 다양화하는 데 몰두했다. 황토를 반죽에 섞어 만든 벽지용 '황토지'와 단풍잎이나 김을 무늬로 끼워넣은 '단풍지''김종이' 등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한 노력으로 1998년에는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 및 노동부 기능전승자에 선정됐으며, 2006년 전북도지정 무형문화재가 됐다.

홍옹은 "나무에 한번 오르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거라오. 밑을 내려다보면 무섭고 꼭대기에는 또 뭐가 있을지 모르지만...다만 전통 한지를 지킬 수 있게 돼 다행입니다"라며 하얀 입김을 내뿜는다.

이제는 손마디가 곱은 데다 기력도 떨어져 종이 만지는 날이 예전에 비해 줄어들었지만 홍옹에게는 아직 외부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한지 체험장을 세워 다양한 종류의 전통 한지와 각종 도구, 기술 자료 등을 전시하고 어린이들에게 우리나라 고유의 종이 만드는 방식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밖으로 나오니 갑자기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홍옹은 "갑자기 눈이 내린다", 잠시 하늘을 올려다본다. 보드라운 한지에서 뜯어낸 것 같은 새하얀 눈송이가 노인의 백발 위로 가만히 내려 앉았다.

한국의유산 이소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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