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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화칠기 최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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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칠이란?

옻나무 한 그루에서 한 컵 정도의 수액을 채취한 진을 바르는 것을 말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값싼 도료로 마감한 중국산이 시장을 점령하면서 옻칠가구는 촌스럽고 질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웰빙이 주목받고 장인들이 만든 100% 천연 도료인 전통 옻칠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옻칠 가구의 아름다움이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현대 가구의 인공적인 느낌과 달리 천연 나무의 향과 결을 느낄 수 있는 자연 친화적인 칠기 제품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것.

전통 기법으로 제대로 만든 옻칠 가구는 정성 어린 50단계 이상을 거쳐야만 비로소 완성된다. 옻은 나무에 스며들면 잘 벗겨지지 않는 것이 특징이며 옻칠로 마감한 목 가구는 건조 후에도 내부가 숨을 쉴 수 있어 방수, 방충, 방염, 항균 효과까지 있다. 또한 옻칠을 한 표면은 견고한 막을 형성해 광택이 뛰어나고, 습기에 강해 오래 사용해도 변하지 않기 때문에 일상 생활용품에도 널리 이용되고 있다.

 

칠공예 견습생으로 칠기와 인연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옻의 산지로 일찍부터 옻칠과 채색 안료를 이용한 칠기(漆器)공예가 발달했다. 칠기 가운데 채화칠기는 생칠의 바탕 위에 옻분말과 안료를 배합해 다양한 색과 문양을 만들어 내는 전통공예 기법이다. 경주 천마총에서 출토된 천마도가 바로 채화칠기로 그 역사는 매우 오래됐다. 그러나 만들기 쉽고 가격이 저렴한 화학칠 공예품이 범람하면서 채화칠기는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반면 중국과 일본에서는 채화칠기 전통 계승은 물론 현대생활에 적합한 칠공예품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채화칠기 특유의 보존력, 방음력, 살균력 등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최종관(채화칠공예연구소 대표·02-338-3634)씨는 사회변화에 따라 문화적 욕구도 높아져 옻칠제품에 대한 전망은 밝다우리나라도 전통의 현대화를 통해 채화칠기를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씨는 30년 넘게 천연도금인 옻칠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채화칠기의 명맥을 잇고 있는 장인이다. 그는 노동부가 선정한 ‘2004년도 민족고유 기능전승자로 선정되었다.

어려서부터 무엇이든 만드는 것을 좋아한 최씨는 20세때 칠공예견습생으로 칠기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나전칠기장인 고 김태희 선생에게 채화칠기 기능을 배우면서 본격적인 기능인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칠을 잘못하면 눈물이 나도록 야단을 맞고 노력한 만큼만 가르쳐 줄 정도로 스승의 교육방식은 엄격했다. 그래도 최씨는 기능인이기에 앞서 먼저 사람이 되라는 스승의 가르침이 오늘의 자신을 있게 했다고 말한다.

 

훌륭한 스승 밑에서 우리 것의 소중함을 배워

우리나라의 채화칠기기법은 출토된 유물로 보아 나전기법보다 앞서서 성행하였다. 그러나 평탈 기법의 유입으로 인한 나전칠기의 급격한 발전으로 통일신라시대 이후 채화칠기는 단편적인 유물에서만 양식을 찾아볼 수 있다.

 

결국 나전칠기의 급격한 발전이 채화칠기의 맥을 단절시켰다고 볼 수 있다. 몇 명의 장인들에 의해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채화칠기는 후계자를 찾지 못해 아쉬움이 더한다.

 

최종관 전승자는 김태희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다. 채화칠기에서는 단연 최고였던 스승의 작품은 일본 전문가들조차도 인정할 정도였다.

 

제 스승은 칠공예의 다양한 기법에 두루 능하지만 채화칠기 분야에선 그 누구보다 특징을 가지신 분이에요. 칠료 그림이나 무늬를 그려 넣는 일이 그건데, 일반 물감이나 먹에 비해 밀도가 훨씬 높은 옻칠을 붓에 찍어서 선을 그려냈거든요. 옻칠은 붓으로 찍어서 선을 그리기가 굉장히 어렵고 까다로워요. 그럼에도 마치먹 붓을 휘두르듯 정확하고 우려한 선을 한달음에 그려 냈죠. 더구나 점진적으로 색체를 표현하는 솜씨는 대단했어요. 그만큼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히 강했고요. 일본이 우리보다 옻칠의 기법이 앞서가잖습니까? 그런 옻칠 기법을 연구하고 연마하여 특별한 기법으로 작품을 만들어 일본에 가져가서 일본장인들로 부터 극찬을 받은 분이 제 스승이에요. 그만큼 우리 것을 지키는 것을 가장 큰 자부심으로 알았던 분이고요. 우리 것의 중요성을 제게 일깨워 준거죠.”

 

 

붉은 색은 궁중에서 쓰던 색상

잘 모르는 사람들은 붉은 색이 일본 문화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우리 궁중에서 사용되던 물건들이 대부분 붉은 색을 띄면서 화려했다.

 

지금 이 작품이 교지함인데 붉은 색만 보고 일본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 겁니다. 이 교지함이 궁중에 6개가 있었거든요. 지금은 하나도 없어요. 일본과 미국에 다 뺏겨버린 거죠. 이 작품은 실물을 볼 수가 없어서 사진을 보면서 규격과 모양을 그대로 본떠서 만든 겁니다. 우리 것을 우리가 가지지 못하고 남의 나라에 내주었으니 가슴 아픈 일이죠. 정말로 소중한 것들이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순간에 외국으로 가버린 겁니다.”

 

채화칠기하면 아무래도 섬세함을 빼 놓을 수 없다. 여성에게 잘 어울릴 것 같은 아름다운 작품들과 달리 맥을 이어가는 사람들은 전부 남자들이라고. 그 이유는 옻칠을 하는 과정이 어렵다보니 여성들은 힘이 부쳐 견디어 내기 어렵기 때문이란다.

채화칠기는 칠한 자리에 다시 덧칠을 반복하는 과정이 28번이다. 그야말로 지극한 인내심의 달인이 아니라면 견디어 내기 힘들다. 현재 우리나라에 채화칠기를 하는 사람은 5명 정도다.

 

그래서 최종관 전승자는 채화칠기 맥을 이어갈 기능자 양성에 가장 많은 신경을 쓴다. 힘들면서 수익창출이 어렵다보니 덥석 하겠다는 이도 없다. 이러다 맥이 끊어지겠다 싶어 두 자녀가 채화칠기를 전승받도록 했다. 우리 것을 이어가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요즘도 바쁜 시간을 내서 일주일에 한 번씩은 백제대학에 나가 채화칠기를 가르친다. 수업을 받는 사람들은 기능을 전수받고자 하는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채화칠기의 매력에 빠져 취미로 배우고자 하는 50대 성인들이다. 열 세명의 제자들 중 주부는 열 두명이고 남자가 한 명이다.

 

장인들을 만나면 가장 궁금한 게 수익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건 참 행복한 일일 테지만 수익이 없다면 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지 않는가? 최종관 전승자에게 수익구조에 대해 물었더니 아내가 답변을 먼저 했다.

 

남편이 조금이라도 편한 마음으로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게 해주고 싶어서 몇 년 전 갤러리에서 찻집을 시작했었거든요. 일반인들에게 채화칠기도 알리고 생활비도 벌어보자는 취지에서였죠.

 

그런데 너무 힘들어서 그만 뒀어요. 보고 관심은 갖는데 활용도에는 떨어진다고 하더라고요. 그렇다고 활용도를 높여 가자니 우리 것이 퇴색되는 것 같고요.

 

그래서 애들에게는 새로운 감각으로 바라보고 실생활에서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보길 권해요. 작년 가족 전에서 애들이 만들었던 작품들이 관심을 가졌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요.”

 

 

실용성과 편리성을 겸한 작품을 만들어야

아쉬운 것은 우리 것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 아직 부족하고 또 좋다는 것은 알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다고 생각하는거예요. 활용도가 떨어지거든요. 그것을 어떻게 하면 현대화된 우리생활에 접목을 할 건지를 연구해야죠. 무조건 옛것 그대로가 아니라 옛날 그 규격과 모양은 그대로 재연하되 실용성과 편리성은 갖춰야 한다는 말이죠. 이 작품은 옛날 관복을 넣어 두던 관복함입니다. 그런데 이 관복함을 예전처럼 방 어딘가에 놓는다면 어울릴까요? 당연히 안 어울리죠. 이미 우리가 사는 구조는 서구화되어 있는데 어떤 소품만 옛것이라면 조화가 안 맞잖아요. 그래서 다리를 달았더니 아파트 현관 입구에 놓아도 손색이 없는 콘솔이 되었잖아요. 바로 이거에요. 옛것, 우리 것을 쓰임새 있도록 현대화시켜서 우리 것이 구식이 아니라 정말로 아름답다는 인식을 가지게 만들어야 해요. 그래야 많은 사람들의 인식도 바뀔 거 아닙니까? 그런데도 우리 문화재기능전승자들이나 관련자들은 이런 생각을 못하고 있어요. 비판의 칼날을 세우면서도 어떻게 하면 일반인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너무나 안일하게 대하는 거죠.”

 

우리의 옻칠을 보러 일본 학생들과 일본 전승자들이 해마다 우리나라를 찾는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차이점이라면 일본은 다른 나라에 견학을 가고, 배우러 가게 되면 공부하는 것은 물론 경비까지 기업체에서 부담을 해준다. 그만큼 고전에 대해 중요시 하고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주 딴판이라고.

 

국내에서 우리 것을 지켜내든 외국에 배우러 가든 그 누구하나 신경 써 주지 않는다. 각자가 알아서 가야한다. 우리 것을 지키기 위한 배려가 없고 문화를 지켜가고자 하는 마음이 결여되어 있다면 과연 우리 것은 언제까지 그 맥을 이어갈지 심히 걱정이 앞선다.

 

우리 문화는 21세기에 맞춰져서 있다. 사람들의 생활도 과거와는 많이 바뀌었다. 좌식문화는 오래전의 문화였고 지금은 편리한 입식문화가 우리 생활 곳곳에 자리 잡았다.

 

우리 고유의 문화도 결국 현대인들의 생활문화를 따라 가지 않으면 불편하다는 인식으로 자리 잡고 만다. 따라서 실용성을 겸한 생활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우리 것의 원형은 보존하되 편리성을 가미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유산 이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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