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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관악기제작 문동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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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관악기제작 국가기능전승자 문동옥 선생님

경주는 묘한 매력을 지닌 도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신라 천년의 고도이니 그 아득한 시간들이 다져지고 아로새겨진 흔적들이 여전히 뚜렷이 남아 있어서 웅숭깊고 그윽한 기운이 절로 배어나기 때문이다. 이곳에 들르는 이들은 그 기운을 쐬자마자 묘한 기분이 들고 신비한 매력에 빠져든다. 문동옥도 그 기운과 매력에 혹해 경주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눌러 붙어 앉아버렸다고 할 수 있겠다.

그는 경주서 한참 먼 전북 정읍 출신이다. 유가 집안의 기운이 세선지 정규교육도 아랑곳 않고 일곱 살 때부터 10년 동안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했다. 보발(머리를 길러 땋음)을 한 채 말이다. 이런 희귀한 차림새와 이력 때문에 서울의 한국 민속촌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정작 그 곳에서 한학보다는 대금 만들고, 연주하는 법을 익혔다. 그런 가운데 우연히 경주에 들렀다가 그만 덜컥 경주에 눌러앉게 되어버렸다.

"경주의 산과 들을 보자 대번에 마음이 흔들렸지요. 1977년이었어요. 그 후 경주가 자꾸 눈에 밟혔어요. 아예 이곳에서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일어 이내 짐 싸들고 내려왔지요. 1979년 경주 시립국악원에 입단한 것은 그런 면에서 우연이 아니었어요." 30여년전 일이다. 그 후 그는 철저하게 경주사람이 되어갔다. "이 곳은 한국 고유의 악기인 대금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만파식적의 혼이 살아 숨 쉬는 곳입니다. 제가 살 곳으로 경주를 잡은 건 이런 면에서도 당연하다 싶었지요. 거기다 한적하고 여유로우며,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곳 아닙니까?"

대금과 인연을 맺은 햇수도 30년이 넘는다. 1974년 한국민속촌에 입사한 이후부터다. 대금은 독창적인 우리의 악기로 꼽힌다. 그 절절하고도 그윽한 소리에 미쳤다. 그리하여 그는 이제 대금산조의 명인이란 소리를 듣는다. 유명한 김동진류의 전승자이다. 연주뿐만 아니라 대금을 직접 만든다. 그리하여 2003년 노동부와 한국 산업인력공단으로부터 죽관악기 부문 기능 전승자로 선정됐다. 대금의 연주와 제작 양면에서 일가를 이룬 드문 예를 경주에서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이다.

 

 

 

대금만드는 이야기

"대금 하나 만드는 데에 얼마나 걸릴까요?"

"1년입니다."

"저기 구석에 있는 저 새파란 대나무들 보이지요? 이리 휘어지고 저리 휘어져 있는 것을 열을 가해 똑바르게 맞춥니다. 그렇게 형태를 갖추고 말리는 데에 6개월. 중간 중간에 마르면서 또 비틀어지는 놈이 생깁니다. 그럼 그때마다 또 반듯하게 맞춰야해요. 그렇게 나온 대나무에 소리길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대나무 속을 파는 일인데 예전에는 손으로 직접 했습니다. 힘이 많이 드는 일이지요. 그래서 내가 직접 디자인해서 기계를 만들었습니다.

"시중에 있는 드릴로 뚫으면 되지 않나요?"

"진동이 없어야 해요. 뚫을 때 기계진동이 있으면 소리의 울림이 예쁘게 나오지 않아요."

갈대의 속살, 아주 얇디 얇은 종잇장 같은 대금청을 붙이는 것으로 1년의 대금제작과정이 완료된다. 실로 지루할 법도 한 여정이지만 제대로 된 소리를 만드는 시간이기에 1초가 소중한 기다림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국의 유산 이소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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