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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석 임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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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의 가업을 잇다..

전남 보성군 조성면 축내리는 꽃마을이다. 면 소재지에서 산쪽으로 길이 끝나는 곳까지 달려가면 나타나는 마을. 동산에는 진달래며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넘치고 집집마다 울타리 안에서 아름드리 살구나무에 맺힌 꽃망울이 눈부신 황홀경을 이루고 있다.

우리 마을은 꽃만 좋은 곳이 아니라 이곳에서만 만든 용문석이 강화 화문석 이상으로 전국에서 유명했지라.”

이 마을에서 용문석으로 2백년 넘게 가업을 잇고 있는 문석 기능전승자 임애경씨의 말이다.

이 마을 사람들이 문석을 만든 지는 400여년으로 조선시대에는 나라님에게 바치는 진상품의 하나였다. 산정마을은 문석 중에서도 용문석으로 알려져 있는데, 용문석은 궁중에서 잔치를 여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돗자리의 일종이다. 실재로 용문석은 용의 무늬를 수놓은 왕골 돗자리이다. 자리 중앙에 청룡과 황룡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문양을 새긴 것이다. 말은 간단하지만 문석에 문양을 놓는 것은 한 땀 한 땀 염색한 왕골껍질을 끼워 입히는 작업을 수없이 반복하는 고된 작업이다. 문석의 임애경씨는 왕골로 용무늬를 새긴 돗자리인 용문석 제작에 남다른 기량을 발휘해왔다. 숙련된 임씨의 손길에 수월하게 보이지만 초보자들은 줄을 끊기 십상이고 문양이 제대로 자리잡기가 쉽지 않다. 문석 한 닢을 만드는데 임씨의 물 흐르는 듯한 솜씨로도 꼬박 한 달이 걸린다. 문석을 짜는 것은 4시간이면 족하지만 무늬를 놓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티 없이 고른 왕골의 껍질로 겉을 짜고 속대로 등메를 짜서 겹쳐 꿰매면, 매끄러우면서도 푹신한 느낌이 그만이다. 또한 천연 섬유질인 왕골이 땀을 흡수하기 때문에 여름철 필수품이다. 일반적인 돗자리와 임애경씨의 작품은 확연히 구별된다.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그가 처음 문석을 배울 때는 단지 어깨 너머로 배우고 손끝으로 익힌 경험만으로 만들어내던 농한기 부업거리였을 따름이다. 하지만 그는 허드레 돗자리로 취급받기를 원하지 않았기에 완벽을 추구해왔다. 문석의 주재료인 왕골은 물가에서 나는데 바람에 쓰러지면 줄기에 붉은 점이 생겨 상품성이 없다. 때문에 바람이 거세지 않은 옥과, 금천 등지의 비닐하우스에서 계약 재배한 왕골을 쓴다. 또한 왕골이 습도에 민감한 만큼 건조시 철저히 관리하고, 절기와 시간을 따져가며 작업에 임한다. 문석은 돗틀에 걸어놓고 짜는데 수십 가닥의 날줄을 상하 가로대에 걸어놓고 바디를 상하로 움직이면서 1가닥씩 씨줄을 놓아 짜나간다. 임애경씨는 폭이 좁은 돗틀의 한계를 개선하기 위해 10여년 전에 직접 돗틀을 개조하여 폭을 넓히고 구조를 단순화해서 작업능률을 높였다. 문석에 문양을 새기기 위해 왕골껍질에 물을 들이는데, 치자로 자연스런 노란색을 내고 적··흑은 화학염료를 사용한다. 왕골이 천연염료로는 고르게 염색이 되지 않아 화학염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그는 지금도 전래의 천연 색상을 되찾기 위해 노력중이다.

 

사라질 위기에 놓인 문석..

촘촘한 왕골 돗자리에 임금을 상징하는 청룡과 황룡을 수놓아 진상품으로 이름을 날렸던 용문석은, 그 화려함과는 걸맞지 않게 슬픈 역사를 갖고 있다. 끼니도 잇기 어려운 시절, 임애경씨의 6대조 어른이 보릿고개를 넘기기 위해 용문서를 만들기 시작했으나, 손끝으로 하는 일을 양반가에서 할 수 없다 하여 이미 만들어져 있던 용문서과 기구들을 당산재에서 모두 태워 없애면서 한때 맥이 끊기기도 했다. 그후 임애경씨의 당숙대를 거치면서 전성기를 맞는 듯했으나, 이제 다시 그 맥이 끊길 위기에 처해 있어 용문석을 아끼는 사람들이 무척 안타까워하고 있다. 문석에 새기는 문양은 글씨만을 새긴 자문석, 난초가 청초한 난화석, 힘찬 용트림의 용문석 등이 있는데 임장인은 전통적인 문양에만 그치지 않고 새로운 도안을 추구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이 노트 서너 권에 가득하다. 하지만 임애경씨는 주재료인 왕골의 공급이 급격히 줄고 있어, 언젠가는 본의 아니게 손을 놓게 될 것 같다는 우려를 앞세운다. 왕골이 토질과 기후에 따라 질이 결정되는 까다로운 작물인 데다, 수요도 예전만 못해 재배농가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형편이다. 언제부턴가 시장에서는 구하기가 힘들어 경기도 금천과 전남 광주 문장의 개인집으로 찾아가야 할 정도로 공급이 적어졌다.

용문석 만들어 큰 돈 안 되지만 내가 하지 않으면 용문석의 맥이 끊긴다고 생각하니 손을 놓을 수가 없어요.”

그의 소박한 바람은 뜻 있는 이에게 문석제작을 가르칠 수 있는 작업장이 있고 현재 둘둘 말아서 보관하고 있는 문석을 펼쳐 보일 수 있는 전시장이 있는 공방을 갖는 것이다.

한국의 유산 장선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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