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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장 최교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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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장

입사장(入絲匠)이란 대략 2000년 전부터 차가운 금속에 꽃을 피워온 우리네 전통 금속공예의 장인을 일컫는 호칭이다. 입사란 말 그대로 금속기물이나 장신구의 표면에 가느다란 실처럼 뽑아낸 금사(金絲)나 은사(銀絲), 혹은 동사(銅絲)를 다양한 문양으로 입히는 작업. 작품 하나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대략 9만 번의 망치질을 해야 하고, 은사 금사를 뽑아내는 단순작업을 수없이 반복해야 하며, 동시에 뛰어난 디자인 감각을 담보해야 하는 창의성과 예술적 감각 또한 필수다. 금속공예 중에도 입사공예는 매우 섬세한 공력이 드는 부분으로 이미 신라시대부터 높은 수준의 입사공예의 제작유물이 보이고 있다.

 

무형문화재 입사장 최교준씨

최교준씨는 17세에 전통금속공예에 입문하여 이후 오랜 세월 기술을 연마하다가 전승공예대전을 휩쓸고 2006년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36호 입사장으로 지정된 장인이다. 경남 의령 출신인 그는 17살 무렵 모친의 권유로 이웃집에 살던 윤희복 선생에게 기술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금속공예에 입문했다. 20대 초반 연달아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아직 어린 동생들은 모두 그가 부양해야 하는 처지였고, 아무리 힘들어도 다른 일에 곁눈을 주지 못한 채 배운 기술로 줄기차게 한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덤벙대거나 실수를 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금이나 은 동 같은 귀한 소재를 쓰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침착하고 끈기 있게 덤벼들어야만 차분하게 원하는 문양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거지요.”

입사기법은 끼움입사와 쪼음입사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최교준이 오늘날까지 주로 활용하는 기술은 쪼음입사 방법이며 아울러 끼움입사에 대한 기술도 지니고 있다.

쪼음 입사란 입사하고자 하는 바탕 금속의 표면에 정을 사용하여 일정한 질감을 쪼아 만들고 그 위에 금사나 은사 등으로 눌러 붙여 문양을 표현하는 기술이다. 끼움 입사는 말 그대로 금속표면에 조각정을 사용하여 원하는 문양을 파 새겨 주고 그 홈에 금사나 은사 등을 끼워 넣는 방법으로써 고려시대의 향로에서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이러한 입사기법은 한국 고대 금속공예품에 많이 활용되었던 표면장식기법으로써 우리 전통금속공예를 대표하는 수공예 기술이다.

 

가슴속에 입사하다

 

우리네 입사공예는 기원전 12세기경 낙랑 출토 유물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가야시대의 금·은사로 입사된 칼자루나 삼국시대의 입사도(入絲刀)를 거쳐 고려시대에 화려한 꽃을 피웠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촛대나 손화로, 필통, 담배합 같은 일상생활 용구로까지 확대됐다. 하지만 귀한 금이나 은을 사용한 장식품이니 일반 서민들은 꿈도 꾸지 못할 고가품일 수밖에 없었다. 최교준씨도 잘 팔리지 않는 입사공예품에 전념할 수만은 없어 오랫동안 안타까운 세월을 보냈지만, 근년 들어서는 그의 작품을 찾는 이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랑방 탁자 위에 놓고 볼 수 있는 조그만 화로나 필통 같은 걸 주로 찾는 편인데 화로는 700800만원, 필통만 해도 100150만원에 이르는 고가품이다. 그는 이제 생계에 대한 걱정보다는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욕구가 더 앞서는 편이다.

끈기가 필요하고 어려운 일이라서 배우려는 이들이 많지 않아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우리의 고유한 이 기술을 후대에 전하려면 부지런히 기록해서 남겨 놓아야지요. 입사에 관한 모든 것을 담은 책을 한 권 내는 게 바람입니다.”

금속으로 만든 기물의 표면을 섬세하게 쪼아 그 위에 은이나 금을 박아 넣는 입사공예는 수많은 두드림, 수많은 손길이 필요한 작업이다. 우리 전통금속공예의 정수라고 꼽히는 입사공예는 9만 번의 손길이 가야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고 말해진다. 2천 년 전부터 만들어진 우리 전통의 금속공예 기법, 긴 세월, 장인들에게로 전해진 전통을 우리시대에 잇고 있으며 갈수록 희미해지는 우리네 전통 예술혼을 가슴속에 입사해 넣는 작업이었던 셈이다.

한국의 유산 장선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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