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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공예 최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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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난 오죽공예

조선시대 이율곡 선생이 태어난 강릉 오죽헌, 그리고 정몽주 선생이 순절한 개성의 선죽교에는 검은빛의 대나무 오죽과 관련된 일화가 있다. 선비의 절개가 서린 오죽은 아무데서나 자라지 않는다. 그 신비한 힘을 가진 오죽으로 단절되었던 죽장공예의 맥을 이어가며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대한민국 기능전승자에 선정되어 전통공예를 전승하는 등 유산을 보존 발전하고 지역 위상을 높여 온 죽장기능 보유자가 있다. 가평군 설악면 창의리에서 현정 오죽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오죽공예 최선희 작가가 바로 그다. 최 작가는 지난 1986년 서울 무형문화재 15호 오죽장 윤병훈 선생의 문화생으로 오죽공예에 입문, 어렵고 힘든 작업공정을 꿋꿋이 이겨내 1997년 서울시 무형문화재 15호 오죽전주 장학생으로 지정됐다. 이어 10년이 넘는 세월을 오죽공예에 열정을 쏟아 2009년에는 대한민국 기능 전승자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오죽공예 외길로 들어서다..

그가 이렇게 힘들고 경제논리에서 보면 비효율적인 전통기능 분야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일종의 인연으로 설명했다. 그는 20대 초반 오죽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전통이라는 단어조차도 생소했다고 말했다. 죽장 작업을 직접 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손재주와 미술적 감각을 눈여겨 본 스승들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그렇게 은사들의 권유로 시작한 대나무 작업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는 그는 최근에야 독립에 성공했다. 전승자로서의 본격적인 행보를 하기 위해서다. 오죽 장인에게서 20년 가까이 그 수를 이어받은 오죽 공예가 최선희씨가 머무는 현정 오죽 공방이 그곳이었다. 그곳은 길가 한옥 문 바깥에 따로 위치해 있어 사람들이 들고나기가 편하게 되어 있었다. 불쑥불쑥 찾아오는 이들이 있어 불편할 것이 뻔한데도 집의 주인인 최선희씨는 언제나 사람 좋은 웃음으로 오는 이들을 반겼다. 불혹의 나이를 목전에 둔 이 답지 않게 그 미소는 언제나 해맑았다. 오죽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북촌을 찾는 이들에게 선뜻 당신의 작업장을 공개하고 체험 프로그램이 있을라치면 손수 재료들을 다듬어 오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분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맥을 잇기가 쉽지 않은 오죽 공예를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알리고자 크고 작은 체험의 자리에 빠지지 않고 달려오시는 분이었다. 전통이란 참 질긴 것이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의 그 전통이라는 것은 시대에 맞게 변화되고 창조되어 지는 것이어야 했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치더라도 그럼 기초가 되고 바탕이 되는 맥은 누가 잡고 이어가려나.

 

특허기술의 발명

그동안 오죽공예에서 직선 문양만 표현하던 방식에서 꽃 모양의 아름답고 생동감 넘치는 곡선의 그림모양을 표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최선희 기능전승자가 대나무를 휘기위한 가공방법이라는 발명 특허를 20115월에 출원해 특허권을 취득함으로써 오죽공예에도 다양한 모양의 공예품이 창작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발명특허와 관련 최 작가는 죽장 공예는 지금까지는 안과 밖으로는 잘 휘지만 옆으로는 잘 휘지 않아 작가 마음대로 작품을 구사 할 수가 없었는데 이번에 착안한 것이 대나무를 0.5미리 이하로 잘게 쪼갠 다음 꽃과 같은 다양한 모양을 따서 응용하는 기술이라고 소개했다. 최 작가는 죽장기능보유자로 전통공예 전승을 위해 지난해 오죽공예의 독특한 기법을 개발 대나무 휘기 가공방법을 비롯 악세사리, 고리, 매듭공예 기법을 특허출원하는 등 새로운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식지 않는 열정

최 작가는 우리민족의 자랑스러운 공예문화를 계승 발전하기 위해 북촌문화센터를 비롯 설악면 주민자치센터 등 각급기관 단체를 순회하며 오죽공예 강좌를 개설하는 등 체험교육 및 후배 양성에도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최 작가는 죽장분야는 다른 전통공예보다 재료선발과 작업공정이 까다로운 우리나라 특유의 고급기술로 기능전승이 매우 어렵다“20여년 간 오직 외길을 걸어온 오죽공예 기능보유자로 자긍심을 갖고 있으며, 한명의 기능보유자로서 인간무형문화재로 선정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최 씨는 지금은 전승자로서 전통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그 안에서 행복과 보람을 찾고 있다비록 가는 길이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지만 우리 것을 지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려운 작업 속에도 재밌고 즐거움을 느낄 때가 많다전통가치에 공감하며 도전하는 후배들이 많이 나타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어 고민이라고 했다. 얼마 전 큰마음 먹고 블로그와 카페를 통해 계승자를 모집했지만 한 사람의 지원자도 없었다고. 생활고를 견뎌야만 하는 악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계승자를 키우고 싶다는 그의 열망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포기하기엔 아직 젊다는 것이 그의 이유. 그는 인연이 닿는 계승자가 있다면 당장은 큰 경제적인 도움을 줄 수 없지만 제가 가진 모든 기술을 아낌없이 전수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최 씨는 전승자로서는 젊은 축에 속한다. 대선배 같은 전승자들을 제쳐두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얘기하는 것이 매우 조심스럽다며 말을 아끼는 그였지만 그의 행동이나 표정에서 묻어나오는 열정만큼은 세월과 나이를 초월하고 있었다. 전통가치와 장인정신을 쫓다 보니 결혼도 미뤘다는 그다. 그러면서 그는 기능전승자의 길은 말처럼 화려하지 않다. 어찌 보면 고난의 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가야할 길이 분명 있어 그는 행복하단다. 언제나 밝은 미소로 사람들을 대하는 순수한 산골소녀 느낌의 최선희씨. 언제나 씩씩하고 솔선수범 부지런하시니 그 대가는 언제고 꼭 돌아 올 거라 믿는다.

한국의 유산 장선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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