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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갈아서 예술을 빚는 옥장인 엄익평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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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공예에 대해

 

옥은 동양 문화권에서 발달된 보석류로서 금, 은과 함께 쓰인 대표적인 보석이다. 광물학적으로 백옥으로 대표되는 연옥과 비취로 대표되는 경옥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선사시대부터 옥이 권위의 상징으로, 또는 아름다움을 치장하는 장식품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옥은 영성을 지녔다고 믿어져 사귀를 물리치는 벽사의 힘과 군자의 덕인 인의예지충신을 나타내므로 예부터 군자는 반드시 옥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색상과 광택은 부드럽고 온유한 느낌을 주며 은은한 광채가 있고 깨끗해서 고아한 군자를 연상케 한다.

 

연옥은 담록색을 띠고 경옥은 순수한 화합물일 경우 흰 경옥을 띠지만 불순물이 함유되면 여러 가지 색상을 띠게 된다. 연옥과 경옥은 일정한 규칙에 의하여 결합되어 있지 않고 불규칙적으로 합성되어 있는 까닭에 쪼아서 조각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갈아서 기물을 만들 수밖에 없다. 옥공예는 정으로 쪼아 다듬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일이 갈아서 만드는 것으로, 채석-디자인-절단-성형-세부조각-광택의 과정을 거쳐 작품이 완성되는데 쇠톱, 활빙개(활비비), 갈이틀, 물레 등 여러 가지 연장이 사용된다. 옥장은 전통공예기술의 장인으로 고가의 원석을 다루기 때문에 정확한 예측이 필수적이며 정교한 조각기능 뿐 아니라 고도의 예술성이 요구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옥공예의 시작

 

엄익평 장인은 충남 논산에서 아버지 엄원봉과 어머니 박춘순 사이에서 7남매 중 6번째로 1957127일 농사꾼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로 이사를 왔는데, 그 때 옆집에 최영식이라는 분이 옥석으로 벼루, 향로, 주전자 등을 만들었다. 옆에서 매일 그것을 보면서 조그마한 옥석으로 장난삼아 따라서 만들어 보며 바랐다.

 

세월이 흘러 최영식 선생의 제자인 홍종호 선생이 1974년 초옥공방을 차렸는데, 마침 가정형편상 중학교 2학년 때 자퇴했던 엄익평 장인에게 옥공예 기술을 배워보지 않겠냐고 권유하면서 이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옥공방에서 강한 옥 덩어리를 자르고 문양을 넣어 연마, 세각 과정을 거치면서 완성된 옥의 모습에 깊이 매료되었고, 세월이 흐를수록 옥에 대한 열정은 더욱 커진다는 그는 제자 엄용구 씨와 함께 옥공예 작품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리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오늘도 작업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옥공예는 옥 자체가 워낙 귀하고 옥을 다듬는 일이 어려워서 그 명맥만이 근근이 이어져 내려오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박물관이나 골동품 상가를 다니며 여러 가지 옥공예 제품들의 문양을 스스로 연구하고 도안을 해가며 세각해야 했다. 또한 궁중 유물관에 있는 봉잠, 떨잠 등을 비롯하여 패옥, 옥각띠 등을 재현하기 위해 수십 차례 다리품을 팔아야 했다.

 

옥공예는 신라시대 이후 그 맥이 단절되었다. 그래서 그 맥을 찾아 문헌을 뒤지며 수시로 박물관에 나가 옛 선인들의 작품을 통해 뛰어난 조형미와 문양 등을 보면서 스스로 기법을 연마해야 했다. 지금은 현대식 기계로 옥가락지 한 쌍을 만드는데 6시간이 걸리지만 아직도 엄 장인은 7일이 걸리는 예전 방식을 고수한다. 이것은 소중한 우리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한 그의 고집이다. 이렇게 옛것에 대해 고집을 보리는 이유에 대해 그는 옥공예를 문화라고 보면 우리 옛날 선조들이 어떻게 했었는지 그걸 잊으면 안 되니까, 현재는 사용하지 않더라도 알고는 가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엄 장인의 조카이자 유일한 제자인 엄용국 씨는 중학교를 졸업하자만자 옥공예의 길로 들어섰다. 처음에는 공부가 하기 싫어 이 길을 택했지만 이제는 천직임을 자신한다고 한다. 함께 옥공예를 시작했던 동료들은 이미 떠나간 지 오래, 이제는 엄용국 씨가 엄익평 선생님의 유일한 동반자이다.

 

우리의 옥공예가 맥이 끊이지 않도록 지키고, 그것을 후손에게 계승, 발전시키는 지킴이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 이렇게 소중한 우리의 전통을 이어나가는 동시에 옥공예 작품을 세계적으로 알리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한국의유산 이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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