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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가죽과 질긴 인연, 무두질 이성운 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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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두질 40년 인생

선사 이래 인간은 사냥을 통해 얻어진 부산물인 짐승의 가죽을 옷으로 사용해왔다. 이 가죽이 언제부터 악기의 소재로 사용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으나 고대시대부터 북 등에 사용했을 것임은 부인할 수 없다.

 

장구장 이성운 선생은 어린 시절 부친이 가죽을 다루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가죽과의 인연을 맺었다. 40여년 가죽과의 질긴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가죽을 다루기 시작한 것은 14세 어린 나이다. 고향인 경남 거창에서 무두질하시던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갖바치의 설움이 담겨있음을 알면서도 가죽과의 질긴 인연을 계속됐다.

 

처음 부친을 따라 가죽을 다룰 때, 그는 천대받는 아버지의 모습이 싫어 가죽을 쳐다보기도 싫었다고 한다. 사람으로 태어나 동등한 입장에서 살아보고픈 생각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이건만 가죽과의 인연을 모질게 끊지 못하고 어느새 40여 년 가죽과 한 몸으로 살아왔다.

 

어린 시절 아버님이 가죽 다루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밖으로 나가면 느끼는 사람들의 눈길에 설움도 많이 당했습니다. 아버님이 다루는 가죽은 이제 신기함의 대상이 아니라 멸시의 대상이었던 것이지요. 피하고 싶다면 피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저의 심정이었습니다.”

이렇게 부친 어깨너머로 배우기 시작한 가죽다루기는 어언 40여년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그가 가죽다루는 솜씨는 남다르다. 요즘 사용되는 기계의 힘도 빌리지 않고, 가죽의 털을 쉽게 제거해주는 화학약품도 그의 손길과는 거리가 멀다. 그만큼 그가 제작한 가죽은 탄력성이 탁월하고 질이 우수하다. 그래서 좋은 악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미리 악기제작을 주문하기도 한다.

그는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모든 공정을 손으로 처리하며, 화학약품의 강한 독성에 가죽이 손상되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백회를 사용해 털을 제거한다. 이처럼 많은 공정과 피곤한 일상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스스로 전통을 이어간다는 뿌듯함도 그만큼 크다.

 

그는 북과 장구를 함께 생산해냈으나 이제 손이 딸려 장구만을 제작한다. 기계의 힘을 빌린다면 가능한 일이지만 굳이 부친에게 배운 기술을 사용해, 북에 대한 미련을 버린 것이다. 그의 장구가 많은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그는 일을 배우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기계화의 물결에 전통적인 무두질이 퇴색해가고, 제대로 된 가죽생산은 더욱 멀어져 간다.

 

이 일을 중단 없이 이어온 것이 제 인생에서 가장 큰 보람입니다. 좋은 악기를 보급해주면 그 악기를 다루는 사람들이 행복한 음을 많은 사람들의 귓가에 전해주고 저 또한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의 가족들은 국악기와 관련된 분야에서 일한다. 바로 밑의 동생 성민 씨는 대사동에서 고전민속국악사를 운영하며, 성룡 씨는 악기로 액세서리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후회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그는 이제 자신이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기술을 전수해줄 사람을 찾는다. 다행히 그의 처남 이용래 씨가 그의 기술을 이어받고자 해 그나마 다행이다.

한국의유산 이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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