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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풀공예 등메장 최헌열 선생





등메의 역사

먼 옛날 원시 인간들은 동굴에서 동물의 가죽이나 들에서 뜯어 온 풀을 깔고 생활하였다. 이러한 풀과의 접촉이 많아짐에 따라 손쉽게 구하기가 용이한 풀을 이용한 생활용품을 고안해 내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원시 인간들이 정착으로부터 어떤 형태든 자리라는 것이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원시 인간 생활이 그러하였듯이 옛날부터 초경식물이나 곡물재료로 생활용품을 만들어 썼던 것으로 추측된다. 완초나 용수초, 볏짚, 보릿짚, 밀짚 등으로 자리나 돗자리, 멍석, 가마니를 엮은, 이러한 초공품 중에 등메가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삼국시대에도 신라는 어좌를 직제하기 위해 석전을 두었다고 삼국사기 직관조에 기록되어 있으나 어떤 재료였는지 무슨 자리였는지는 분명치 않다.

 

고려 초에 와서야 비로소 등메의 윤곽을 알 수 있는데 해동역사는 요사를 인용하여 고려 목종 11(1008)에 요나라에 용수초 31석을 보냈다고 기록하였다. ‘요나라 통화 26년인 무신 5월에 사신을 보내어 문화무공 양 궁전에 용수초 31석을 전물하였다라는 최초의 기록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이전으로 추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같은 책에 <원씨액정기>를 인용하여 원나라 순제가 영영을 위하여 경화도에 채방관을 세우고 안에 당인 만화문석을 깔았다고 하였다. 그것은 성질이 부드러워 부러지지 않으며 광택이 있어 매우 좋다고 하였다.

북송시대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 인종 때 고려의 문물을 둘러보고 기록한 <고려도경>에도 검고 흰색이 서로 섞여서 무늬를 이루고 청자색 테가 둘렸다. 정교한 것은 핌상과 평상에 깔고 침상에 까는 자리는 매우 우수하며 부드러워접거나 굽혀도 구부러지지 않는다라고 극찬하였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더욱 확연해 가는데 <세종실록> 12(1430) 2월 정유를 보면 명나라에 대한 세공품목이 적혀 있다. 다음과 같다.

석류로는 만화석, 만화방석, 염석, 황화석, 해화석이 있으며 해동역사 교빙31에는 중종 26(1531)에 공물 중 석류로 황제에게 용문염석 20, 황화석20, 만화방석20, 잡채화석 20, 이며 황후에게 황화석10, 만화방석10, 잡채화석 10매라 하였다.”

또한 통문관31 <사대방물> 유목에도 경종3(1723) 이후 오조용석 등 각양 화석이 국외로 보내지는 선물로 계속 선택되고 있었다.

<임원> 십육31 섬용31 3 가거31구에 용수석 항에서 또 <금화경득기>의 글을 인용하여 용수석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일본 에도시대에도 우리나라 통신사가 가지고 간 대화석이 있었음을 기록으로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등메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우리나라에서 중국에 가는 사신이나 일본에 통신사가 선물로 가지고 갔던 물목에 포함되었던 뛰어난 공예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등메란?

용수초는 일명 장골 석룡추라 하는데 본초강목에 의하면 이 풀은 말먹이 풀로 용추라 하며 현완이라고도 한다. 들의 습지에 자생하며 여러해살이 풀이다. 키는 70cm정도 자라고 총생하며 싹이 곧게 솟아 줄기 끝 가까이에 자잘한 꽃이 피어 자그마한 이삭이 맺는다. 7,8월에 베어서 건조시켜 사용하는데 단단한 나무로 만든 상하 마룻대로 구성된 제작 틀로 백석을 치고 염색한 채색제로 디자인에 따라 일일이 문양을 넣어 고정시킨다.

 

문양의 종류로는 입에 불로초를 물고 나는 장수를 뜻하는 쌍학문과 수복강령의 문자를 놓고 죄문을 두룬 단색의 길상문 반추상의 꽃문양 중심의 화문, 그리고 창호문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문양에 필요한 채색재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백색이 필요할 때는 마령초를 다듬고 손질하고 가공하여 사용하며 청, , 흑 등 전통의 기본색과 그 외에도 디자인의 다양화로 여러 가지 간색의 필요성에 의해 간색을 쓰는데 용수초를 직접 염색하여 사용한다. 특히 용수초의 염색은 천에 비해서 겉피질이 유기질로 염료가 잘 침염 되지 않아 염색이 까다롭다. 그러므로 간색을 염색 할 때에는 오랜 숙련이 필요하다.

 

부판으로는 부들지직을 대는데 부들은 습지에서 자생하는 풀로 키는 2m 정도 자라며 줄기가 여러 겹으로 되었다. 이 부들은 채취하여 건조시킨 다음에 제작 틀에서 부들지직을 엮어서 사용한다. 백석에 문양을 놓아 부들지직으로 부판을 대어 고정시키고 바탕의 문양 색감에 따라 청색, 흑색, 자주색, 갈색포로 아름답게 회랑을 꾸민다.

용도는 침상이나 평상에 깔아 사용하며 또한 보료로 이용한다. 등메는 옛날에 궁중에 진상품이었고 궁중에서 주로 사용하였다

 

최헌열 선생은 1988년 전승 공예 대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하였으며 1990년 생활공예 창작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하였고 1992년 한국 문화 예술 진흥원장상을, 1994년 문화 체육부 장관상을 수상하였다. 1995년 한국 문화 예술 진흥원장상을, 1997년 문화체육부 장관상을 수상하였고, 1999년 제24회 전승 공예 대전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2004년에는 노동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1997년 일본 동경 메구로, 나가노현 고마가네 고갱미술관 전시를 비롯하여 2004년 오사카 전시, 2000년 프랑스 마르세이유, 2001년 파리(라데팡스)전시, 2001년 중국 운남성, 2002년 연길(연변), 2004년 곤명시 전시, 2005년 독일 베를린 전시 등 국내외 전시 및 시연에 참가하였다. 밖으로는 우리 공예문화를 세계 여러 나라에 소개하고 알려 국위를 선양하였고 안으로는 전통공예 선호사상 고취 및 정서생활 함양에 이바지 하였다.

 

선생은 2000ASEM 특별전 초대작가, 2003년 청주 국제 공예 비엔날레 초대작가, 강원(속초)관광 EXPO 초대작가, 1999년 세계일보사 전통 공예전 초대작가로 전시에 참가하였고, 대한민국 기능전승자회, 한국 무형 문화재 기능보존회 등 여러 공예 문화 단체에서 임원으로 문화활동을 하였다. 2000년 신지식인에 선정되었고 대한민국 기능전승자 97-1호로 활동하며 전승 공예 대전 심사위원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여러 박물관의 유물이 훼손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 정성들여 복원해왔다. 문화재청과 몇몇 관련 기관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어 먼 훗날 오늘에 우리나라 문화와 공예기술을 이해할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한국의유산 이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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