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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껍질 속으로 타들어간 낙죽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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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죽공예 명맥 이어온 낙죽기능전승자 조운창 선생

낙죽(烙竹)은 인두를 불에 달구어 대나무 표면에 글씨나 그림을 그리는 기술을 말한다. 이 기술은 펜이나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대나무 표면을 불에 그을려 다양한 문양과 글씨, 그림을 새기는 것으로 미적 감각은 물론 오랜 인내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섬세함이 필수인 전통 공예기술이다. 이런 낙죽은 1969년 중요무형문화재(31)로 지정됐는데, 담양에서 그 명맥을 잇고자 평생을 살아온 이가 바로 조운창(63) 선생이다.

소질은 있었는데 돈벌이도 시원찮고 누구 알아주는 사람도 없어서 여러 번 때려치우고 싶었어. 그럴 때마다 죽을 때까지 끝장을 보자고 대들었지. 내가 인정을 못 받으면 자식들을 가르쳐서라도 인정을 받겠다고 결심하고 말이야. 지금은 끝까지 하길 잘한 거 같아.”

2006년 노동부에서 낙죽기능전승자로 선정된 그가 지난 30여 년 세월 외길로 걸어오기까지는 남들이 모르는 인내의 시간이었다.

낙죽의 시작은 좋은 대나무를 고르는 것부터다.

봄에 난 대나무를 그해 겨울 동지 무렵에 베어낸 게 가장 좋아요. 안 그러면 대나무가 금방 갈라져요.”

1년생 대를 푹 삶은 뒤 그늘에 말려내면 낙죽이 가능하다. 이제부터는 오로지 인두 끝에 맡겨야 한다. 오직 장인의 손놀림에 달렸다는 것.

특히, 인두의 온도에 따라 색의 짙고 연함이 달라지는데 이를 깨우치는 게 낙죽장의 길로 들어서는 것과 마찬가지다.

연기가 피어오르며 인두가 지나는 자리마다 수려한 산과 강이 그려지고, 고운 자태를 뽐내는 학도 새겨진다.

 

조 선생이 인두를 처음 잡은 것은 지난 1972. 어려서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그는 담양의 무형문화재 낙죽장 국양문(1998년 작고) 선생이 그리는 낙죽을 어깨너머로 배우며 낙죽기술을 키웠다.

사사를 받지는 못하고 가끔 뵈면서 기술을 배웠어요. 특히 인두의 온도조절과 전통민화 등은 그분의 영향이 컸습니다.”

조 선생은 인두를 이용, 얇디얇은 화선지에도 그림을 그려낸다. 이는 종이에 그린다 하여 낙화(烙畵)라 부른다. 달구어진 인두 때문에 종이에 구멍이 날만도 한데 그에 손놀림은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완벽한 낙화를 구사해낸다.


“34년을 하루 15시간 이상 낙죽과 씨름하며 살았어요.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이 기술이 끊이지 않도록 더욱 많은 이들에게 전수하고 싶습니다.”

 

작품이 완성될 때 가장 행복감을 느낀다는 조운창 선생은 대나무의 고장 담양에서 낙죽의 전통을 잇는 것이 꿈이다. 다행히 선생의 둘째아들 원익 씨가 뒤를 잇고 있고 손자 재호 군도 낙죽에 재미를 붙인 것 같아 기대가 크다.

선생은 요새 담양남초교 어린이들에게 낙죽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 각종 체험교실과 공예교실을 열어 기능을 전수하고 있다.


내가 낙죽용 인두가 없어서 함석용 인두를 쓰던 시대보다는 일단 좋아진 거잖수. 전통 방식도 미적 감각이 결합한 제품이 나오면 부가가치 높은 상품이 될 게요.”

 

이내 식어버린 인두를 화로에 담그며 선생이 말한다. 오기와 열정으로 얼룩진 땀방울이 장인의 이마에 맺힌다.


선진국들은 전통방식이 근간이 된 첨단기법의 도입으로 많은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죠. 낙죽 또한 전통에 현대적 기술과 감각을 더한다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의유산 이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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