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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10역, 가마솥 외길 인생 이경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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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 가마솥만 평생 만들어 장인 이경호 대표


이 대표의 안내를 받아 들어선 조그만 사무실은 잡동사니로 가득 차 있었다. 수십 년은 돼 보이는 철제 책상 두 개, 중심을 잃어가는 때 묻은 의자 두 개, 벽면 안쪽에 캐비넷 하나, 그리고 벽면을 둘러싼 다양한 크기의 가마솥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내가 사장이고 잡부며 경비원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 회사의 연구원이기도 하죠. 허허···.”

이 대표는 실제로 그러했다. 아니 이 대표뿐만 아니라 현재 이 공장의 직원 15명이 모두 사장이자 종업원이었다. 그 사정은 이러했다.

경영의 제일 원칙은 이익창출과 그에 따른 나눔의 정신이요. 그 정신을 유지한다면 네 것, 내 것을 가릴 수 없는 단계에 올라서는 것 아니겠소. 현재 이 공장의 직원들이 곧 사장이라는 의미는 내가 시켜서 일을 하는 수동적 종업원이 아니라는 것이요. 일을 하지 않고 게으른 사람, 능력 없는 사람이 있다면 종업원들 스스로가 그 직원을 내쫓아 버리고 맙니다. 어느 한사람이 게으를 경우 그 직원의 일감이 다른 직원들의 부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으니까.”

대단히 합리적인 조직이다. 직원들 스스로가 능동적으로 일을 하고 그 일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상시 구조조정 체계를 갖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덕택에 사양 산업으로까지 여겨지는 소형 주물공장이 아직도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회사는 일제치하인 1926815일 창업돼 2대째 유지되고 있다. 이 지방의 유지였던 이성방 씨(1954년 작고)에 의해 설립된 이 회사는, 설립될 당시 이름은 용금(用金)철공소. 기미년 3.1운동이 일어난 뒤 민족기업의 육성이 절실히 요구되던 시점에 문을 연 것이다.

당시 주물기술은 일본인이 독점하고 있었고 우리 기술은 백지상태일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일본인 기술자로부터 기술습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창업주 이 씨는 중국 천진으로 건너가 36명의 중국인 기술자들을 데려왔다. 중국인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상호도 쌍합성(雙合盛)으로 바꿨다. 이후 사업은 순풍에 돛을 단 듯 풀렸다. 일본인들의 과점상태에서 한일간 경쟁체제가 됐고 가격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쌍합성 제품이 구매했기 때문이다.

중국과 일본이 전시체제로 본격 돌입하면서 지난 1942년 중국인 기술자들은 본토로 추방됐다. 그동안 우리 기술자들이 다수 양성됐다. 해방 후에는 남한 전역의 전력사정이 좋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쌍합성은 여기에 착안, 발동기를 생산해 대히트를 기록했다. 또 논밭 쟁기질에 필수적이었던 보습(쟁기의 끝부분에 끼워 맞춰 끼우는 삽)을 대량생산, 전국 농촌의 주문대기에 바쁠 지경이었다. 1954년 창업자였던 이 대표는 별세했고 이 회사의 경영은 조카 이경도 씨에게 넘겨졌다.

당시 집집마다 필수품이었던 가마솥은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며 알루미늄 솥의 보편화와 함께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19807월부터는 이경호 대표가 뒤를 이어 경영에 뛰어들었다. 이 대표는 해군사관학교 9기로 1979년 해군대령으로 예편해, 가업을 잇게 된 것이다.

 

이 대표는 사라져가는 우리의 옛 맛을 되살리는 일에 여생을 바칠 각오를 하고 있다. 그러다가 아파트에서도 가스 불을 이용, 전통 밥맛을 낼 수 있는 소형 가마솥을 고안해 냈다. 과거에는 주로 농촌 사람들이 주 고객이었지만 현재는 요식업 분야나 가정에서 가마솥을 찾고 있어, 시대의 변화에 맞춰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이 대표가 처음부터 자신을 연구원이라고 소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도 이 대표는 일 년에 3~4건 정도 신제품을 개발해내고 있다. 또 이 신제품의 최고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강철은 전량 포항제철에서 가져다 사용했으나 포항제철이 주물용 선철 생산량을 줄이자 현재는 중국산 철을 수입해 쓰고 있다.

 

중국산 철은 처음 수입할 시점인 지난해 초반에는 값이 쌌죠. 그러나 수입할 때마다 50씩 값이 올라 지금은 최초 수입 당시 가격보다 600이상 올랐죠. 중국이 자본에 눈을 뜬 겁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경쟁체제에 들어서면서 자신들의 낙후를 벗고 있다는 증거죠. 한마디로 인간의 의욕을 북돋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그동안의 사회주의 체제에서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 점을 우리나라도 깨닫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직 나눔과 베품의 미덕에 치우쳐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릴 시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비록 작은 기업이지만 나름의 굳건한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이 대표는 최근 둘째 아들이 전통의 맥을 잇겠다는 의사를 밝혀 왔음에도 아직은 때가 아니다고 만류했다고 한다.

경기침체로 힘든 시기이기 때문에 지금 이 사업을 물려줬다가는 쉽게 포기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대표는 아직도 가마솥 판매가격을 원자재인 선철 값이 오르기 전 상태로 유지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통의 맥을 잇는 작업이기에 이윤을 지나치게 추구하다보면 그나마 있던 고객도 떨어져 나가 맥이 끊길 것을 우려해서다. 단순한 이윤 추구가 아닌 기업이 사회에서 갖는 의미를 먼저 곱씹으면서 그 맥을 이어가는 이 대표의 모습에서 이 시대 장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소촌공단을 나왔다.

한국의유산 이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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