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팩·찾기
12.19 (화)
2012 - 2018 『한국의 유산』발굴ㆍ조사 사업
next
prev
김종관(국가상..
이영석 광주광..
김화영(국가상..
김종관(국가상..
양희석(국가상..
김태완(국가상..
정현도-한민대..

한지 최미화

edf40wrjww2portal_Interview:contents
fiogf49gjkf0d




한지의 역사

오늘날 닥나무 껍질로 만든 전래의 종이를 모두 한지로 통칭되고 있으나 중국 등지에서는 시대에 따라 계림지·고려지 또는 조선지라 하였다. 우리 나라에서 한지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 다만 지리적으로 중국과 인접해 있어 고대부터 문물교류를 통해 중국의 제지기술이 유입되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그 가운데 4세기경 불교의 전래와 함께 도입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한지의 불교전래설은 610(영양왕 32) 고구려의 승려 담징이 일본으로 종이 기술을 전수한 기록이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또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704년 추정)755(경덕왕 14)에 제작된 대방광불화엄경은 모두 불교와 관련되어 나타난 한지자료이다.

특히, 대방광불화엄경 발문에 적혀 있는 종이 만드는 기술과 제작처의 지명 그리고 지작인(紙作人) 등은 우리 나라 한지의 역사를 밝혀주는 귀중한 단서이다.

 

고려시대에는 목판인쇄술과 함께 금속활자 인쇄술이 발전하면서 한지의 수요가 급증하였고, 대장경조판과 각종 서적의 간행에 따른 종이의 수요가 확대되자 농가에서 닥나무재배를 권장하기도 하였다. 또한 종이를 생산하던 지소(紙所)와 조지부곡(造紙部曲)을 두어 국가의 한지 수요를 뒷받침 하고 있었다.

한지 수요와 생산이 가장 활발하던 시기는 1516세기이다. 이 시기는 고려시대이래 지속되어 온 지소와 조지부곡이 폐지되고 관영제지소인 조지소가 1415(태종 15) 설립되어 제지생산을 국가가 주도하였다.

이 시기는 중국으로부터 제지 기술을 도입하고 닥나무 생산을 확대하려는 노력뿐만 아니라 부족한 닥나무 대신 쑥대··보릿짚·대껍질·삼대· 버드나무··초절목피·잡초·수태 등을 혼용지료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국가에서 운영했던 관영제지소인 조지소는 공납제의 폐단과 지장(紙匠)에 대한 지나친 신역의 강요로 결국 관영수공업이 쇠퇴하는 원인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국가 재정이 결핍되고 관리의 부정부패가 더해지면서 관영제지수공업은 15세기 후반부터 쇠퇴하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관영수공업이 쇠퇴한 반면 사찰을 중심으로 하는 사찰제지업이 활기를 띠었고, 또한 사장에 의한 민간에서의 제지생산도 활발해지는데 이는 조선 전기에는 찾아 볼 수 없는 변화상들이었다.

 

 

잠월미술관 봄빛 나들이

이번 전시에서 최미화 씨는 한지의 색감과 질감을 살려 정감 넘치는 옛 생활모습을 담은 작품들을 선보인다.

전통 종이인 닥종이를 활용, 강강술래, 고무줄놀이, 기차놀이 등 전통풍습은 물론, 지금은 보기가 쉽지 않은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인형들을 전시한다.

 

 

최근 최미화 선생님의 동향

최미화 선생님은 지난 329일에 있었던 그랜드오픈전야제 조인식에 참여를 하였다.

이 조인식은 초, , , 대학생 직업체험학습 평가지도·교정의 교육길잡이,

2012-2018한국의 유산발굴·조사사업은 우리문화의 창조적 계승·발전을 위한 혁신적 산업경제 융·복합으로서, 지역청년일자리창출 및 지역경제활성화의 혁신적 창조하는 초석을 미래의 동량과 함께, 미래를 준비하는 취지가 있다.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직업(진로)체험학습을 통하여 한지공예를 전파하고 널리 알려 꾸준히 전통이 이어지길 바라는 최미화 선생님의 마음을 추측할 수 있다.

한국의 유산 김민성 기자

▣ 댓글 게시판
※ 먼저 로그인을 하신 후에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댓글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하위 댓글이 있을 경우 함께 삭제됩니다.
비밀번호  
 
[댓글달기] 작성자 ※ 먼저 로그인을 하신 후에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