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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제작> 문상호





, 전통 미술의 기본 도구

 

 

초등학교 때 대한민국이니, ‘충효를 붓글씨로 써 오는 숙제가 있었다. 나는 아버지 옆에서 먹을 갈면서 아버지가 써 주세요, 하며 기다리곤 했었는데, 아버지는 명심보감의 몇 구절을 죽 써 내려갈 뿐 내 숙제를 써 줄 기미는 없었다. 결국에는,

인제 네가 한 번 써 봐라.”

하시며 붓을 건넸다. 아버지가 쓸 때는 아버지가 붓을 부리는 것 같더니만, 내가 쓰려니 붓이 내 마음대로 부려지질 않았다. 붓을 곧추 세워 쓰라는 것은, 연필을 꾹꾹 눌러 쓰던 초등학생에겐 거의 초능력을 요구하는 것과 같았다.

 

그 때 잡았던 이라는 물건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붓은 우리 전통 미술 분야에서 가장 기본적인 도구다. 문방사우 중 핵심인 붓에 대한 책은 우리나라 어디에도 없다. 오직 경험담과 구전에 의존한다. 그래서 붓을 적합하게 보관하는 법도 비상식 투성이다. 흔히 붓을 물에 빨아 걸어두는 방식은 붓을 망친다. 붓에서 먹물의 아교성분을 물로 씻어내는 기능은 털 구멍이 빈 공간에서 붓이 썩게 만든다. 먹물이 밴 붓의 냄새는 먹물에 남은 아교 성분이 남은 탓이다. 붓의 생명력은 오히려 온도와 통풍이다. 장마 때에 썩고 겨울에도 썩는다. 집안의 온도와 습도 때문이다. 그래서 냉장고에 넣어서 보관하고 쓰는 것이 완전하다. 물론 먹물도 냉장고 보관하면 생명력이 유지돼 붓이 잘 나가게 기능한다.

이런 붓이 없다면 옛 시절의 그림도 글씨도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시대 최고의 필력가로 인정받는 추사 김정희의 고목나무 꺾듯 힘찬 글씨체를 보여주는 갈필(葛筆)’은 우리 들녘에서 캐낸 칡넝쿨로 만든 붓이다.

 

이 갈필을 복원해 낸 사람이 있다. 무형문화재 4호 문상호(69) 필장.

 

붓의 과학, 전통 붓을 복원하다

 

서예는 힘과 균형의 산물이다. 여기서 붓이 지닌 과학성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붓의 정밀함이 붓글씨의 화려함에 가려지는 것이다. 하지만 물체와 힘이 주는 과학적 상관성을 붓에 적용해 보면 알 수 있다. 인장력과 압축력이 완벽하리만치 조화를 이룬 것이 우리 붓이란 것을. 자연의 순리로 안정성을 유지하되, 붓의 뭉툭하며 뾰족한 형태를 만든다. 기름기가 말끔히 빠져 속이 텅 빈 염소 털 100여 가락이 한 올 한 올 미세간극을 두고 순차적으로 쌓여 뾰족한 끝에서 두툼한 중간 형태로 길죽하게 뻗쳐올라간 붓의 형태. 그 속은 서로 간의 연적 결합력이 단단하게 뭉쳐져 있어 털이 빠지지 않는다.

 

염소 털로 만든 모필(毛筆)만큼이나 부드럽게 만든 것이 문상호 필장의 노필이다. 갈대로 만든 것이다. 특히 그의 죽필은 글씨에서 모필과 같은 글씨 모양을 보일 정도로 완벽하게 먹과 붓의 조화를 보여준다. 부드러우며 힘을 보여줄 때는 꽉 눌러쓰면, 그제야 대나무의 강인함을 드러내며 서체의 힘과 유연함 최대로 살아난다.

 

수입되는 갈필과 그의 갈필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아주 부드럽게 써지는 글씨체에서 판명된다. 더구나 우리 선조들이 가장 흔히 썼던 고필(稿筆)’을 볏짚으로 복원하면서 붓의 소재 섭렵에 탄력을 더했다. 처음에는 볏짚 그대로 만들었고, 뒷면을 이용해 모필과 똑같은 모양새의 정밀한 붓을 복원했다. 볏짚 모양을 살린 붓은 글쓰기에서 서걱서걱 소리가 난다는 옛 어른의 증언을 토대로 한 것이다.

 

이는 무형문화재 신청에서 증거가 됐다. 고필의 존재 자체를 전면 부정하던 관계와 학계 서예계에 그가 처음 고필의 전승가치를 입증한 것이다.

 

그는 일본에서 보존형으로 만드는 탄생필의 우리 원형인 태모필(胎毛筆)’도 복원했다. 엄마 뱃속에서 태어난 영아의 머릿결은 모공의 끝이 살아있어 붓 끝을 살린다. 그의 태모필은 실전이 가능하다. 그는 백수에 작고한 어머니의 머릿결에서 새로 났던 결만 간추려 붓을 만들고 있다.

 

그의 갈필과 달리 중국산·일본산 갈필은 글씨체에서 거칠다. 그는 1992년 죽필과 갈필 복원으로 전승공예대전에 등귀하고 이어 1993년 고필도 입선하게 된다.

 

바닷가에서 자란 갈대를 붓의 소재로 만드는 과정을 정밀과학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과정을 복잡하게 얽힌 미로를 찾아간다. 뻣뻣함을 죽이기 위해 소금물로 삶아낸다. 부드러워지면 아교가 흡착된 먹물의 견인력과 잘 싸워 이겨내야 한다. 스스로 압축되면서 붓글씨의 굵고 가는 선의 정밀함에 탄력을 이겨내는 비결은 어디에서 왔을까.

오직 개인 연구로 볏짚과 갈대, 대나무 칡넝쿨이 다뤄졌다. 그 결실은 붓의 소재가 질겨지고 동시에 부드러워지는 조화점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소금으로 질기게 만들고, 볏짚의 잿물로 부드럽게 만드는 조화가 핵심이다. 대나무는 10시간 이상 소금물에 약간의 볏짚을 넣어 삶아 낸다. 갈대도 마찬가지. 단지 고필을 만드는 볏짚은 소금물로만 삶아내면 된다. 그런 고필이 예서와 전서에서 힘과 기예를 동시에 살려준다.

 

이 전통기법은 완전히 망각된 상태에서 그에 의해 되살아났다. 염소 털로 만든 모필 제작으로 시작된 그의 필기능(筆技能) 입문이 독립적 기예로 길을 찾아 나선 것이다. 결실은 전승으로의 복원이었다. 염소 털의 기름기를 제거하는 데 화공약품에 의존하던 제작 공정에 반기를 든 것이다. 그가 찾아낸 전통의 기법은 모필의 염소 털에서 속을 텅 비게 만드는 소재는 우리의 왕겨였다. 왕겨를 태워서 나온 기름을 먹물에 쓰는 전통비법을 응용한 것이다. 가장 고급스럽게 써지는 글씨는 왕겨를 태운 기름이 배합된 먹을 갈아서 만든 먹물이란 전통기술의 내역을 역으로 적용했다. 그렇게 염소 털 내면의 기름기를 제거하면서 화공약품으로 기름기를 뺄 때 섬유질이 파괴되는 작은 부작용마저 해소했다.

 

붓에 입문한 이후 평생을 이사하지 않고 광주광역시 백운동 집에서 살며 붓만을 만든 경력이 독특하다. 원래 40~50년 전 광주 백운동 일대는 붓 만드는 동네로 한가락 했던 고장이다. 다양하고 종류별로 수많은 붓을 만든 백운동은 전국 각지에서 붓을 구입하러 올 정도였다.

 

진다리 붓으로 유명한 곳은 바로 먼 곳이 아닌 우리 고장 광주 백운동이 원산지다. 백운동은 그 때 당시 벽도교(진다리)’라는 긴 다리가 있었던 곳으로 전라도 사투리인 질다에서 유래해 60년대 말부터 이 동네에서 만든 붓은 진다리붓으로 부르게 됐다.

1942년 전남 장흥 장평에서 태어난 문상호 필장도 1969년부터 진다리 붓장인 최유일과 같은 집에서 살면서 붓쟁이 생활을 시작했다. 어쩌면 붓을 많이 쓴 보림사 인근에서 자란 어린 시절부터가 붓과 각별한 인연이 닿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그의 공방 이름도 보림필방이다.

 

중국에서 붓을 공부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박순이 개발한 양호필(羊毫筆) 의 제작기법을 충실히 전수받은 최유일로부터 붓 제작에 필요한 꼼꼼한 재료의 재료의 선택, 철저한 공정을 익힌 것이다. 계보를 따지자면, 박순, 최유일, 문상호로 이어진다.

 

군대를 다녀오고 광주 백운동에서 살아오면서 20대 중반부터 43여 년간 해온 그의 인생은 백운동 역사의 산증인이었다. 그 후 문상호 필장은 독자적인 연구를 계속하여 1986년 월봉필방을 열고 붓제작에 몰두하였다. 1992년 주된 생산품인 양호필 외에도 죽필, 계모필, 갈필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의 스승 최유일과 박순 씨는 우리나라 최초로 염소털붓을 제작한 사람들이었다. 스승을 이어 문상호 필장은 죽필과 고필을 10여 년 동안 연구한 결과 특허를 받게 됐다. 그가 개발한 죽필과 고필은 모필보다 글이 훨씬 부드럽게 이어나가는 붓이다.

 

문상호 필장은 붓은 만든 사람, 판매하는 사람, 쓰는 사람이 따로 있으면 발전이 안 된다면서 내가 만든 붓을 구매한 서예가들이 대회에서 큰 상을 탔다는 소식을 들으면 너무나도 기쁘다고 말한다.

지금은 미술시간에 일부지만 60~70년대에는 중·고등학교에는 서예시간이 따로 있어 붓을 장만하기 위해 서울사람들까지 내려와서 선금을 주고 구입하던 시절 당시 그의 인생은 전성기였다. 하지만 반평생을 붓을 만들어오며 살아왔지만 현재는 그 붓으로 인해 고민이 많다. 수요가 줄어들어 붓 제작으로만 생계를 꾸려나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전통공예를 전수하려고 해도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 걱정이 태산이다.

 

이대로 두면 전통기능은 사라져버린다는 그는 현대 사람들은 예체능 쪽은 돈을 주고 배우려고 나서지만 우리 숨결이 묻어져 있는 전통공예는 누가 월급을 주고 돈을 줘도 배우려하지 않는 게 안타깝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처럼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고 붓의 재료인 붓털을 판매하는 사람 자체가 사라져서 전통문화를 이어가기 힘든 현실이다. 하지만 그는 전통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그의 한길 붓 만들기는 우리 전통공예 기능전승자로 선정되었고 20002월에는 고 김대중 대통령의 초청으로 청와대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 당시를 떠올리며 문 필장은 “40여 년 동안 전통문화 계승에 혼신을 쏟아 왔지만 기능전수자에 대한 충분한 대우를 해주신 분은 김대중 대통령이었다고 말한다.

 

2005년에는 오랫동안 바랐던 예향광주에서 전통공예의 끈을 이을 무형문화재(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필장)로 선정됐다. 또한 노동부에서 대한민국 붓 제작 기능전승자 99-1호에 지정받고, 행정자치부에서 대한민국 붓 제작 신지식인 03-75호에 지정받았다.

 

우리의 죽필과 고필을 널리 알리도록 2007년에는 일본 동경문화원에서, 2008년에는 오사카 문화원에서 전시회를 가진 그는 자신의 전통 붓을 보고 일본사람들은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렇듯 그의 작업실에서는 장인의 손길이 닿은 붓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그의 작업실에는 또 지금까지 그가 대전에 출품했던 다양한 붓을 볼 수 있는 전시방이 있다.

기능이 다르고 만드는 과정이 다른 필장의 붓은 써본 사람만이 알 수가 있다. 광주·전남에서 이름난 학정 이돈흥 서예가 역시 그의 붓을 찾는다. 그뿐만이겠는가. 수많은 화가, 서예가들이 그렇다.

 

전통공예 계승에 힘을 쓰고 있는 문 필장은 일본처럼 전통문화는 귀하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도록 우리 정부에서는 많은 지원과 대우가 있길 바란다면서 매일 작업실 책상 앞에 앉아 붓을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며 섬세한 손길로 대나무 손질과 털 정리를 하며 여생을 살아가고 있다.

한국의 유산 장선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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