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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2018 『한국의 유산』발굴ㆍ조사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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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 박병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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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야

-박병택

토우야, 너는 왜 그렇게 못 생겼냐

무슨 생각하냐?

가끔 물어본다.

 

무엇이 즐거워

신라시대부터 악기를

오늘날까지 들고서

어떤 곡 연주하냐?

 

작은 흙덩어리 토우야,

너는 왜 그리 헤헤 웃고 있냐

슬퍼도 슬퍼 보이지 않고

무서워도 무서워 보이지 않는

토우야 너의 얼굴

왜 어리석어 보이냐

 

춤추는 토우야

누구를 위하여

즐거웁게 천오백년을

춤을 추냐 토우야

 

아직 풀지 못한

신비한 너의 이야기를

신라의 이야기를

들려다오 토우야

 

토우 기능 전승자인 박병택 씨의 전시회(2011)토우를 주제로 삼은 시. 이 전시회에서는 10여 년 동안 신라 토우를 재현해 온 박병택 씨의 기마인물상 등 신라 토우와 신라 토기, 신라 토기와 접목된 옹기 작품, 찻잔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신라인의 삶에 대한 애정, 토우(土偶)

 

신라 시대의 고분들이 밀집해 있는 대릉원. 신라 고분 가운데 가장 큰 무덤인 황남대총의 동쪽 평지는 토우가 최초로 출토된 곳이다.

 

1926, 경주 토목공사 현장에서 발견된 수십 개의 고분 안에서 독특한 유물들이 발굴됐다. 깨진 토기와 함께, 처음으로 토우가 출토된 것이다. 토우는 흙으로 빚은 작은 인형이다. 10cm 미만의 크기로, 사람에서부터, 동물, 생활도구 등이 다양하게 표현돼 있다.

 

고대 삼국 가운데 오직 신라에만 있는 독특한 유물이다.

토우는 1,500여 년 전 신라인들이 그들의 삶의 모습을 형상화한 흙인형이다. 세세한 부분을 생략한 절제와 정형을 무시한 자유분방한 표현으로 인해 어눌하면서도 재미난 토우는 보면 볼수록 정감이 느껴진다.

 

신에 대한 희생의 대용이나 기원, 숭배의 대상으로 또는 부장용으로 제작된 토우는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생활용구, 집 등 모든 것을 본뜬 것으로, 가령 개 토우의 경우를 보자. 꼬리가 짧거나 아예 없는 개 토우는 5~6세기 신라 고분에서 여럿 발견되었다. 발굴단은 오랜 세월 탓에 꼬리가 없어진 것이라고 추정해 왔다. 그런데 혈통복원작업을 통해 경주개의의 존재가 분명해졌다. 날렵하게 달리는 모습, 생김새는 마치 진돗개를 연상하게 하는 이 개가 신라시대부터 살아온 경주개이다. 이것은 옛 문헌의 내용과도 일치했다. 삼국사기에 야생 사슴과 같은 짧은 꼬리 모양을 한 개라고 기록돼 있다. 역사적 고증까지 거쳐 신라의 개 토우가 재조명된 것이다.

 

사람 곁의 동물뿐 아니라 인생의 희로애락, 악기, 농기구 등 신라인의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들이 토우가 되었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은 사람 토우는 우울한 표정, 환한 웃음, 큰 눈물을 흘리는 절망과 은은한 미소 등 다양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죄수 토우나, 죽음을 슬퍼하는 여인 토우 등은 그들이 느꼈을 회한과 사랑의 감정이 오롯이 전해져 온다.

 

손으로 흙을 빠르게 주물러서 빚어내는 토우로 사람살이의 애정을 드러냈던 신라인들이야말로 진정한 예술가들이었다. 정교한 표현은 생략하고, 과감할 정도로 대상의 순간적인 동작이나 표정만 포착해 낸다. 마치 스냅사진처럼. 즉흥적으로 만들어 투박하지만, 오히려 그 단순함 속에 힘이 넘친다. 토우가 집중적으로 만들어진 시기는 5~6세기 무렵. 당시는 국호를 신라로 정하고 왕권을 강화하고 강력한 고대국가로 성장하던 때이다.

 

토우 기능전수자 박병택

 

토우를 빚는 주된 도구는 사람의 손이다. 반죽해 놓은 점토 한 덩이를 떼어 송편을 빚듯 손을 몇 번 놀리는가 싶더니 사람 형체 하나가 만들어졌다. 그 모양이 세밀하지는 않지만 투박하면서도 살포시 웃는 얼굴이 정겹기만 하다. 모든 것을 생략했지만 그로 인해 많은 부분을 담게 되고, 만드는 사람의 순간순간 감정이 그대로 나타나는 형태. 토우 기능전승자 박병택 씨는 절제의 미학과 틀에 박히지 않은 자유분방함을 토우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토우를 만들 때 가장 어려운 점은 얼굴 표정입니다. 표정이 내 감정과 엇갈릴 때, 토우 표정은 웃는 얼굴인데, 나는 그 날 슬펐거나 기분 나빴거나 이러면 토우에 언짢은 얼굴이 나타납니다. 그 때가 가장 어려워요.”

 

만드는 사람의 순간순간 스치는 감정이 그대로 토우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신라인들도 그렇지 않았을까. 그래서 천 년이 지난 지금, 토우를 보는 우리에게도 그 진솔한 감정이 전달되는 것이리라.

 

민속공예촌 건너편, 하동 못가에 위치한 사로국요는 신라토우를 오늘에 되살리려는 노력으로 살아온 토우 기능전수자 박병택(63) 씨의 일터이다.

 

영덕이 고향인 그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울산 남창에 있던 매형의 옹기공장에서 일하면서 토기와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1983년부터 7년간 경주 신라요에 근무하면서 신라토기 명장 유효웅 씨로부터 토기제작기법을 사사받았다.

 

어려서부터 토기를 만들면서 고배와 항아리 등에 붙어있는 토우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그는 1989년 자신의 사로국요를 열면서 토우작업에 열중했다.

토우가 왜 만들어졌을까, 그리고 왜 사라졌을까. 그 궁금증 때문에 토우 제작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사로국 이전까지는 토우가 성행했으니까요. 공방 이름도 사로국으로 지은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신라가 사로국이었을 당시에 토우가 가장 성행했던 시기이기 때문에 이를 재현하고자 하는 뜻에서 요 이름을 사로국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아 지난 2005년 토우기능전수자가 되었다.

 

토우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면, 많은 부분을 생략하면서 자기의 생각과 생활상을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마치 아이들이 흙을 조물락거리며 만드는 것과 같아서, 그 또한 토우처럼 꾸밈없이 순박하고 해맑다.

 

지난 88년 서울올림픽 토우작업작가 참여와 박물관 작품 전시 등을 통해 그 실력을 인정받은 그 역시 장인들처럼 토우의 대중화를 바라고 있다. 그가 구상하는 토우 대중화 해법은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과의 어울림이다.

 

다음 세대의 문화예술은 교류가 아니라 어울림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표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청자색을 띤 토우를 제작하는 등 다양한 소재와 형태의 실험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내 대학이나 해외 강연, 전시행사 참여 등 토우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어디든 갑니다.

 

토우 알리기에 보내온 세월만큼 재능에 대한 고민 역시 많았다고 토로하는 박병택 씨. 그래서 기능전승자로 지정되어 기뻤다고 한다. 토우 얼굴에 웃는 모습을 많이 담으려고 노력한다는 그는 여전히 힘들고 고단한 작업이지만 즐겁고 재미있게 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흙을 만지는 사람은 세월이 갈수록 격의 없이 어울릴 수 있어 좋다는 박병택 씨. 그래서 흙과 함께 한 자신의 인생을 성공했다고 평가한다며 환하게 미소 짓는 그의 얼굴이 토우처럼 정겹기만 하다.

 

부인 이잠순(61) 씨는 평생을 토기제작을 같이해온 동지이며, 공고 세라믹과를 나와 강원대 공예과에서 도자기를 전공한 아들 광현 군이 대를 이어가고 있다. 출가한 두 딸 가운데 큰딸도 현재 토우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유산 장선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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