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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반> 박종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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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진천, 진천공예마을

 

청주 시내에서 불과 20여 분 거리에 위치한 진천공예마을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공예의 모든 장르가 집결돼 있는 곳이다.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깊은 산속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사람은 모두 33. 장작가마로 도자기를 굽는 김장의, 천연염색가 연방희, 목공예가 박종덕, 금속공예가 정차연, 칠보작가 선영순, 서양화가 손부남 등이 공예와 디자인과 미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바람처럼, 햇살처럼, 불꽃처럼 살아가고 있다.

 

1997년 충청북도 내에 거주하던 공예인 박종덕·김장의·김세진·손종목 등이 자연 조건이 양호하고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한 진천 지역에 공예마을를 조성하자고 제안하여 진천공예마을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20003월 기본계획을 수립해 2001317일 진천공예마을협동조합을 설립, 200310월 충청북도로부터 공예마을조성 협동화실시계획을 승인받아 같은 해 11월 부지 조성 공사를 추진하여 20069월 준공 승인되었다.

 

진천공예마을의 33가구의 건축양식은 획일적이지 않다. 주인장마다 다른 집, 각각의 생각과 철학을 건축이라는 양식에 담아내고 있다. 이 때문에 각양각색의 건물을 돌아보는 재미도 색다르다. 서로 다른 차이 속에서 느껴지는 예술의 영혼은 뜨겁고 가슴 벅차며 신비롭다.

 

제일 높은 곳에 눈에 띄는 한옥집이 바로 목우(木愚) 박종덕(52년생) 씨가 운영하는 목우당이다. 목우당 안안방 장농은 육영수 여사의 고옥이 철거될 때 너무 아까워서 문짝을 떠매다가 만든 것이라고 한다. 독특할 뿐만 아니라 예쁘다. 다시 자손들이 달라고 하면 줘야지 뭐.” 라고 말한다. 무욕과 탈속의 경지가 느껴진다. 이층에 있는 그림 몇 점이 주로 동자승을 그려 놓았는데, 어쩐지 박종덕 씨를 닮은 듯하다. 천진하고 탈속한 느낌. 불교 미술을 전공한 딸이 그렸다고 한다. 딸은 단청장이 되었다고, 이제 제 밥값은 한다고 웃는다.

 

박종덕 씨는 나무의 숨결을 살려내는 일, 그곳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고 희망을 심어주는 일을 한다. 나무를 깎고 켜고 다듬고 맞추면서 나무와 함께 40여 년을 보냈다. 그러니 작가는 이미 쟁이의 경계를 넘어 나무의 애절한 사연까지 엿들을 수 있는 달인이나 진배없다. 작가의 혼과 정신은 나무를 다루는 거칠고 투박한 손을 통해 세상에 첫 선을 보인다. 아무리 좋은 재목이어도, 아무리 좋은 생각이 있어도 숙련된 손이 없으면 빛을 볼 수 없다. 작가는 그 손으로 소반을 만들고 찻상을 만든다.

 

소반 기능 전승자, 목우당의 박종덕

 

우리 조상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소반과 더불어 살았다. 지체 높은 양반에서부터 머슴에 이르기까지 어느 계층에서나 사용한 생활필수품으로 산지에 따라 그 지방색이 뚜렷한데 그 중에서도 경상도 통영반, 전라도 나주반, 황해도 해주반이 유명하다.

 

또 다리의 모양에 따라 개다리소반, 호족반, 죽절반, 외다리소반 등으로 불리는데, 이는 단순히 짐승의 다리를 흉내만 낸 것이 아니라 무관은 호랑이를, 문관은 말을, 개는 서민을 뜻했다고 한다. 소반의 재료로는 탄력이 있어 흠이 잘 생기지 않고 가벼운 은행나무를 비롯해 가래나무, 소나무, 느티나무, 피나무, 호두나무 등이 주로 쓰인다. 또 면이 트거나 흠이 생기는 것을 막고 방수와 멋스러움을 위해 생옻칠, 황칠, 주칠, 흑칠, 식물성 유칠 등을 여러 번 입힌다.

 

박종덕 씨는 2003년에 소반(小盤) 부문 기능 전승자로 지정되었다. 그 당시 옥천에 살며 공방을 운영하며 전통공예의 기능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는 소반(小盤) 부문을 비롯, 농 금고 교자상 TV 받침대 등 목공예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그의 목공예품은 전통방식에 따라 철저한 수작업에 의해 만들어지는 까닭에 똑같은 제품이 하나도 없는데다 못을 쓰지 않고 재료들을 홈과 촉으로 연결한 것이 특징. 이 때문인지 박 씨가 만든 가구에서는 인간냄새가 난다는 평이 함께 한다. 주문 생산 방식과 전통 기법을 철저히 고수하는 장인 정신이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때문이다. 그의 손길이 빚어낸 가구들은 그래서 해가 갈수록 잔잔한 멋을 풍긴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은 인기와 평판이 높아 웬만한 작품의 가격은 100만원을 훨씬 넘는다.

 

또한 나주반 원형 복원에 노력해 전통기법을 밝혀내기도 하고 소반 유물을 450여 점이나 수집할 정도로 자신의 분야에 열성적이다.

 

나무 깎는 일에 미쳐서

 

자신을 나무 깎는 일에 미친 사람이라고 말하는 장인. 때문에 그 일을 시작하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빠져든다.

 

그는 천직을 벌써 40년 째 하고 있다. 나무가 좋아서, 나무 깎는 일이 좋아서 시작한 목공예는 누구에게 배운 적은 없지만 타고난 손재주를 바탕으로 스무 살에 개인전을 여는 등 세인의 이목을 끌었다.

사실 소반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생활고 해결을 위해서였어요. 종류도 많고 당시에는 수요도 많은데다 다른 목공예품보다 많은 기술을 부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런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더군요.”

20대 초반 원주 구룡사에서 무명스님을 만나면서 인생의 전환을 맞게 된다.

스님의 전각 하는 모습에 반해 무작정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졸랐어요. 스님은 당신에게 배운 기술을 반드시 10명에게 전수해야 한다는 단서를 다셨어요. 전 기술 배울 욕심에 무조건 알겠다고 했죠.”

 

그래서 6개월 동안 대구와 원주를 오가며 기술을 배웠다. 이를 밑천으로 1973년 약관의 나이에 고향인 대구에서 목공예 학원을 열어 강의했으며, 경북도 교육위원회 목공예 연수강사를 지내기도 했다. 군 제대 후 대전으로 거취를 옮겨 공방을 운영하면서 본격적으로 소반 만들기를 시작했다.

대중화 위해 다양한 작품 개발

 

박종덕 씨는 발품을 팔아 전국을 돌며 직접 보고 만지며 제작기법을 배우고 관련 자료를 모았다. 전통의 맥은 이어가되 오늘에 맞게 제작방법을 개선하는 노력과 함께 짜임새 있고 내구성 있는 소반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기법도 개발했다. 생활품이 곧 예술품이라는 믿음. 쓰임이 디자인을 낳고 디자인은 쓰임을 통해 생활미학을 탄생시킨다는 것이다.

이런 미학에서 생활환경이 변하면서 생활 밖으로밀려난 소반을 다시 생활 속으로끌어들이고자 한다. 그래서 소반의 개념을 생활소품뿐만 아니라 인테리어 소품으로 인식하도록 다양한 작품을 개발하려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스님은 저에게 기술이 아니라 나무에 대해 가르치신 겁니다. 손으로 만드는 것은 잔재주일 뿐이죠. 나무를 보는 순간 쓰임새를 알 수 있는 안목을 갖는 것이 중요해요. 상의 크기가 나무의 형편에 따라 결정되는 것과 같은 이치죠. 스님이 말씀하신 10명도 바로 그런 안목을 가진 장인을 일컫는 것이었죠.”

나무의 형편이라는 말이 뭔가 하고 내 머리를 치고 간다. 나 자신의 형편이나 남의 형편도 못 살피는 곳이 사람 사는 곳인데, 이런 곳에서 나무의 형편을 살피는 이가 있다니.

 

박종덕 씨는 스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여전히 나무에 무지한 자신부터 다그쳐야 한다.”며 부지런히 손을 놀린다. ‘스님과의 약속때문일까? 그는 어린이나 청소년 교육에도 열심이다.

 

재작년에는 진천상업고등학교에 가서 전교생을 대상으로 진로 교육을 하기도 했다. 목공예에 관심 있는 학생은 언제든지 공예마을로 찾아오라고 말도 해 두었다. 박종덕 씨뿐만 아니라 진천공예마을도 ‘2012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운영기관으로 선정돼 가족과 함께하는 공예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

 

목우당을 찾는 이에게 소탈한 웃음과 탈속의 바람을 느끼게 해 주는 사람, 나무의 형편을 살피는 사람, 나무 깎는 일에 미친 사람, 박종덕. 진천에 가면 그를 만나보아야 하리.

한국의 유산 장선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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