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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금은세공 양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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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3가에 위치한 보은(대표 양응수)40년 외길 인생을 걸어온 전통금은세공 기능 전승자인 양응수(58) 선생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작지만 40년 인생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공방 안에는 노리개와 비녀 등이 전통기법으로 재현되어 옛 선조들의 멋스러움을 담아내고 있다.

 

전통금은세공은 금, 은 재료를 주조와 단조를 통해 형태를 갖춘 다음 무늬나 글씨 등 문양을 새겨 넣어 노리개, 비녀, 단추, 가락지 등 각종 장신구를 만드는 기능이다. 특히 은 덩어리를 두드려 일정한 두께로 펴고 은선을 뽑아 원하는 문양을 만드는 일련의 제작과정이 대부분 수작업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세세한 관심과 집중력을 요한다. 제작기간은 제품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평균 1~3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나마 과거에는 모든 과정이 100% 수작업이었는데, 요즘은 문양 틀은 금형이나 다이캐스팅을 이용하고 동력도 기계화되어 비교적 수월해졌다고 한다.

 

어떻게 금은세공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계산해 보면 남는 것은 없지만 돈 벌 생각이었으면 벌써 다른 일을 찾았을 겁니다. 래도 가르친 사람들이 독립해서 잘 되고 제가 만든 물건들을 인정받을 때 보람을 느낍니다.”

30년 넘게 금은세공 일을 해오고 있는 양응수 선생. 지난해 전통금은세공 기능전승자로 지정받은 그는 자신의 일이 돈벌이가 아닌 선택이었기에 후회도 없다고 말한다. 때문에 주물 틀에 의해 대중적인 제품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회를 뒤로 하고 전통제품 재현에 매달렸다.

 

양응수 선생과 금은세공과의 인연은 우연한 기회에서 비롯됐다. 당시 16살이던 1970년 말 친구 대신 남대문에 있는 금은세공 공방에 나간 것이 30년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 곳에서도 처음 3년여 동안 궂은 일과 허드렛일만 했다는 그는 그런 와중에도 몰래 연습하고 어깨 너머로 기술을 배워 나갔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1980년 초 독립과 함께 인사동쪽 물건을 납품하면서 본격적인 전통금은세공의 길로 접어들었다. 주요 고객들도 국악인, 복식 연구가, 방송국 관계자 등이 대부분이다.

 

전통적인 금은세공품을 복원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처음에는 고증을 통해 재현하는 데 참 많은 어려움을 겪었어요. 전통기법을 체계적으로 전수받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스승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결국 혼자 공부하면서 이렇게 해 보고, 저렇게 해보면서 수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완성해 갔죠.”

의뢰가 오면 사진이나 책 등을 통해 연구하고 이를 토대로 다시 다듬고 고치는 과정을 반복해 완성품을 만들어 냈다. 이렇게 다져진 그의 손맛을 통해 그동안 많은 장신구들이 재현되었다. 요즘처럼 기계가 좋아졌다고 해도 사람 손이 가야 제 멋이 살아난다고 한다.

깔끔한 마무리에서 제품의 차이가 납니다. 마무리가 제품의 질을 결정합니다. 이는 결국 제품이 담고 있는 뜻을 알아야 장신구의 맵시()를 살릴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단순히 흉내를 내는데 그칠 뿐입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80년대 중반까지 10여 명의 제자를 길러내고 대학생들까지 기술을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등 장신구 관련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진가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세태가 변하면서 30~40명씩 근무하던 세공사도 점차 사양화되어 가내수공업 형태로 축소됐다. 더욱이 요즘은 세공기술을 배우려는 사람들도 거의 없어 걱정이 앞선다고 토로한다.

 

전통세공기술이 열악한 작업환경과 보수적인 시장형성으로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죠. 때문에 체계적인 기능전수도 이뤄지지 못하고……저 또한 몇 년 전부터는 시력이 급속히 나빠져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죠. 그나마 막내 동생이 기술을 배우고 있어 큰 힘이 됩니다.”

 

1990년 초 그룹전, 초대전, 공모전 등을 통해 작품 활동을 하기도 했던 그. 전통 금은세공품의 복원 과정도 어려웠지만, 금은세공 장인의 한길을 걷는다는 자체도 큰 어려움이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한 길만을 걷다보면 어느 순간 회의를 느낄 때도 있고 슬럼프를 겪을 때도 있습니다. 누구나가 한번쯤은 겪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40여 년을 금은세공에 종사하면서 전통 기능 전승자라는 영예를 얻을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며 그 타이틀에 걸맞게 항상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자신의 작은 작업장에서 주어진 업무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선배와 후배, 그리고 동료들이 기술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02년에 기능 전승자로 지정되었을 때, 그나마 그동안의 회의와 좌절을 잊을 수 있었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을 때 더 좋은 창작능력이 샘솟을 것이며 이는 업계 전체가 발전할 수 있는 큰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누구라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바라시는 바가 있다면…….

 

기계화, 도시화 등으로 전통문화가 단절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반면에 우리의 멋을 알고 문화를 계승하는 것이 자신의 삶이라고 생각하는 공예가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과의 꾸준한 교류는 우리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줍니다. 예를 들어 노리개를 만들려면 세공과 매듭 그리고 한복이라는 각각의 전통기법이 서로 조화를 이뤄야 하기 때문에 다양하게 분포된 전통기법이 쉽게 끊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통귀금속 세공 기술을 배운 후에 전통공예가 아닌 일반 귀금속을 하는 후배들도 많이 있는데 그들의 세공 기술 안에는 전통 기법이 녹아 있습니다. 또한 그들도 우리의 전통기법을 몸에 익히고 다른 방면으로 조금씩 풀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통문화를 이어가고 있는 공예가들과의 교류, 조화가 전통의 맥을 잇게 할 것이라는 그의 생각. 전통문화라는 공간이 열려 있는 곳, 흐르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일 게다. 그리고 장인들을 지켜보는, 문외한들에게 바라는 바는 관심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남의 것만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우리 전통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고 지켜나가는 데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국의 유산 이소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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