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팩·찾기
06.25 (일)
2012 - 2018 『한국의 유산』발굴ㆍ조사 사업
next
prev
정만순(국가상..
양광호(국가상..
전라남도 태권..
태권도 국가상..
유형환(국가상..
박윤국(국가상..
태권도 국가상..

전통목기 김인규

fiogf49gjkf0d





2012, 덕암 김인규 천년의 사랑()

 

장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작품전이 열렸다. 발우를 비롯한 전통목기 제작에 평생을 바친 김인규 씨가 한국불교문화역사기념관 나무갤러리에서 덕암(德岩) 김인규(75) 옹의 천년의 사랑. 불교용품부터 생활용품, 전통제기, 옻칠유골함, 촛대, 불당제기 등 90110점을 선보였다.

 

3대째 전통목기의 맥을 잇고 있는 김인규 씨는 17세 때부터 부친의 뒤를 이어 60여 년 동안 나무 선별부터 제작, 가공, 칠 등 모든 과정을 전통 방식인 문활기법(무늬를 살리는 기법)으로 직접 수공예로 제작하고 있다.

 

2002년에는 장인정신으로 전통목기에만 전념해 전국 최초로 전통목기(발우, 제기) 분야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기능 전승 보유자로 인정을 받았다. 그 때 그는,

전통목기 분야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기능보유자로 인증을 받아 너무나도 많은 감동을 받었으며 모든 분들께 고맙다는 말씀밖에…….” 라며 말을 잇지 못했었다.

 

또한 전국 공예품대전 수상 및 대전광역시 우수전통공예 지정업체, 대전광역시 It`s Daejeon 대표브랜드 선정, 우수발명특허품 우선구매선정 및 정부조달 전통공예품업체 지정, 대한민국 100대 향토명품 선정, 현 일본 후쿠오카, 삿뽀로 상설전시관에서 옛것의 소중함을 인류만방에 알리고 있으며 현재는 아들에게 예술혼을 전수하고 있다.

 

삼대째, 50여 년이 넘는 이유 있는 집념

 

김인규 선생은 조선말 목기 특산지였던 남원 지리산 자락에서 태어났다. 1937년 전북 남원시 산내면 부은리가 그곳인데 거기에서 산내면에 있는 기술중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열일곱이 되던 1954년에 대전으로 옮겨와 50여 년이 넘게 목기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17살부터 현재 3대째 이어오는 문활기법(무늬를 살리는 기법)으로, 대한민국 전통목기 기술로 1900년대 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100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전통목기제작은 고려시대 때부터 전성기였다.

 

나무선별부터 제작, 가공, 칠 등 모든 과정을 전통방식으로, 직접 수공예로 3대째 전통목기의 맥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는 현재 대전시 대덕구 덕암동에서 목기공방 고려공예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진 제작기법을 보존·복원한 것은 물론, 자신만의 조형법과 도색법을 개발해 그 역사·문화적 가치와 예술성을 높였다.

 

부친 김갑진(金甲眞)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목기(제기·바루)제작 기술. 하지만 처음에 그는 왜 내가 해야 하는지, 도대체 싫고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께서 생전에 9남매 중 넷째인 어린 저에게 가난할 때 전통목기제작을 전수시키는 것은 전통의 맥을 꼭 이어갈 사람은 형제 중 너밖에 없다는 말씀에 그때는 정말 싫었고 이해하지 못했으나 세월 흘러 지금 그 때를 생각하니 부친께서 선견지명이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공기계, 가공칼, 옻칠 붓(100년이 넘음) 부친께서 물려주신 것을 가지고 대전으로 무조건 상경해서 산 따라 나무가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라도 가서 전통목기제작에 전념하고 군대3년 복무를 마치고 그 이후로 오르지 전통목기제작에만, 외길 인생을 걸어오고 있다.

 

그때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 중 생활은 어렵지만 금전을 먼저 생각하지 말고 조상님을 생각하는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전념하라는 말씀이 50년 넘게 앞만 보고 지독하게 달려왔지만 어려운 전통목기제작 일을 하겠다는 3대째 우리 큰아들이 있기에 지금에 와서 아버지께서 남기신 뜻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김인규 선생도 눈앞에 이익보다는 우리 것을 전승한다는 여유 있는 마음으로큰아들에게 전통목기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선생의 뒤를 이어 전통방식의 목기를 만들게 된 이는 그 아들 김용오 씨다. 대학에서 전기공학과를 전공해 대전의 중견기업 공장장으로 비교적 윤택하게 생활하던 그다. 2007년 돌연 사표를 내고 가업을 잇게 된 데 다른 이유는 없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공방에서 나무를 만지작대며 놀던 것이 결국은 피에 배인 재주였던 것. 하지만, 본격적으로 아버지의 일을 계승하게 된 데에는 계기가 있었다.

 

일본여행 중에 여비나 벌어볼 생각으로 우동 명장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 집이 5대째 가업을 이은 유명한 집이었다고 한다. 궁금한 게 있으면 못 참는 성미인지라 제작과정에 조금 관심을 보였더니 정색을 하며 경계를 하더란다. 그들의 대단한 자존심과 자부심에 놀란 김용오 씨는 문득 아버지를 떠올렸다.

 

우리 집도 백 년이 넘게 이어온 일이 있는데……라는 생각이 새삼 강렬하게 마음을 두드리더군요. 그리고 이제 내가 그 일을 이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지요.”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 가장 만류했던 사람은 아버지였다.

 

아이들이 커가는 마당에 돈도 안 되는 이 일을, 더구나 요즘처럼 빠른 시대에 이렇게 느리고 수고로운 일을 이어받겠다니 아버지께서 가장 걱정이 크셨지요.”

하지만 김용오 씨의 결심이 워낙 대단하고, 그 재주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기 때문에 김인규 선생은 아들에게 정식으로 기술을 전수하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부친과 자신에 이어 장남까지 3대째 전통목기의 명맥을 잇게 되어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그릇 하나에 쏟는 6년의 정성

 

전통제기 1벌이 만들어지기까지 102번의 손길이 닿아야 한다. 주재료인 원목을 고른 뒤 야외 건조장에서 3년 정도 자연건조를 시킨다. 자연 건조된 원목을 필요한 크기로 자른 뒤 다시 자연건조(3)를 하고 초벌 및 재벌깎기로 모양을 낸다. 다음으로 옻칠과 물사포질로 옻칠을 살짝 지우는 작업을 11번씩 반복한다. 비 내리는 습하고 무더운 날을 골라 열한 차례 옻칠을 한다고 한다. 옻칠을 거듭해 완성하기까지도 95일이 걸린다니, 뭐든 기계가 뚝딱 만들어내는 요즘 같은 세상에 그런 정성이 없다.

이런 복잡한 과정 탓에 한 달에 30벌밖에 못 만든다. 특히 최근에는 값싼 중국산 목기가 수입되면서 판로에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옻칠도 8번 이상을 해야 뒤틀림도 없고 한결같은데 중국산은 서너번 칠해 놓고 판매되어도 구별이 쉽지 않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렇다고 욕심을 부릴 생각은 없다. 욕심이 커진 만큼 정성은 작아지기 때문이다.

금전을 먼저 생각하지 말고 조상을 섬기는 정성으로 제기를 만들라는 부친의 가르침을 실천에 옮길 뿐이라는 김인규 선생.

 

이렇듯 공들여 매만져서 완성한 작품들인지라 아들 김용오 씨도 목기 하나하나 자식처럼 생각한다. 방송이나 신문매체에서 취재가 있거나 중요한 손님이 있는 날이면 오늘 손님 오신다네. 늬들도 고운 빛깔 자랑해서 좋은 데 시집장가 가야지.”하고 목기들에게 신고를 한다고. 김용오 씨는 목기를 만드는 이의 마음가짐이 정결하고 따뜻해야 좋은 기운을 지닌 작품들이 나오고, 좋은 기운을 지닌 작품은 주인을 만나서도 복을 가져다 준다고 믿는다. 그래서 늘 공방의 작품들을 소중히 여겨 존중한다.

 

또한 페인트나 니스의 경박한 광택은 나무의 자연미를 가려버리지만 옻칠은 나뭇결에 깊이 배어 고유의 무늬에 생동감을 부여하면서 스스로도 신비로운 빛을 발한다. 공장물건만 써온 요즘 사람들에게도 전달될 감동이니 오래 지켜야 할 기술임에는 틀림없다.

덕암 김인규 선생이 선보인 고려공예 최고의 작품은 옻칠 유골함이다. ‘천년의 사랑이라 이름 지어진 덕암 선생의 옻칠 유골함은 옻 성분 특유의 방부효과와 나무함의 통기성 덕에 곰팡이나 벌레가 생기지 않아 최근 찾는 이가 많아졌다. 이 작품의 독특한 제작과정은 다른 어디서도 모방할 수 없다.

 

특히, 고려공예는 찻상, 식기, 발우, 유골함 등 옻칠을 요하는 모든 목공품을 제작하지만 가장 특화된 품목은 역시 제기이다. 중국의 값싼 옻칠 상품들이 대거 밀고 들어와 시장을 잠식해버리고 있지만 안동 등 명문가를 비롯해 기제사를 정성껏 모시는 집안에서 여전히 전통방식으로 제작된 고려공예의 제기를 찾아주고 있다.

 

제기를 온전히 한 벌 갖춰 모셔가는 분이나 형편상 몇 개만 모셔가는 분이나 조상을 생각하는 그 자손들의 마음씀이 참으로 갸륵하다는 생각입니다. 비단 조상신이 보살펴 잘 된다기 보다도, 후손들 보기에 부모의 효성이 모범이 돼 그런 가정은 화목과 행복이 절로 깃들지 않겠습니까?”

 

계승인 김용오 씨 말대로 제기를 구매해간 손님들 중에는 집안에 경사가 생겨 고맙다고 인사를 전해오는 이도 종종 있다고. 직장을 놓고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치면서까지 이 길에 들어선 그에게 더욱 용기를 북돋는 것은 바로 그런 좋은 인연들이다.

부모님을 모시는 것과 같이 원자재 구입부터 제작과정 및 옻칠 등 모든 과정을 빈틈이 없도록 최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힘쓰고 있다.”는 덕암 선생의 장인 정신이 좋은 기운으로 이어져 있는 것일 게다.

한국의 유산 김은미기자

▣ 댓글 게시판
※ 먼저 로그인을 하신 후에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댓글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하위 댓글이 있을 경우 함께 삭제됩니다.
비밀번호  
 
[댓글달기] 작성자 ※ 먼저 로그인을 하신 후에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