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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화)
2012 - 2018 『한국의 유산』발굴ㆍ조사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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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 김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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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대에 옹기종기 모인

옹기종기, 크기가 다른 작은 것들이 고르지 않게 많이 모여 있는 것을 이르는 말로, 큰 항아리와 작은 항아리가 사이좋게 모여 있는 모양에서 나온 말이다. 장독대에 밝은 햇살을 받으며 여러 항아리들이 있는 모양새가 좋아 나온 말이리라.

 

옹기의 사전적 의미는 오지그릇과 질그릇으로 잿물을 입혀 구운 것을 오지그릇, 그렇지 않은 것을 질그릇이라 한다. 전통 옹기는 만드는 모든 과정에서 화학물질이 전혀 들어가지 않으며 물은 새지 않고 공기는 소통이 가능해 일명 숨쉬는 그릇으로 불린다. 그 옛날 물에서 장, 김치까지 대부분의 먹을거리를 저장하였던 옹기는 발효 음식이 주를 이루는 우리나라의 식생활에 안성맞춤인 저장고였다.

 

잘 빚은 항아리는 빛을 차단하고 열을 받아들이며 공기 소통이 원활해 몸에 이로운 미생물들이 발효 작용을 잘할 수 있도록 돕는 한편, 산화를 방지해 음식이 썩는 것을 막고 곰팡이도 거의 피지 않게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릇 안의 노폐물을 밖으로 배출하고 염분이 음식에 지나치게 스미는 것을 막는다고 한다. 항아리에 간장이나 된장을 담가놓으면 표면에 하얗게 소금이 맺히는데, 이는 옹기의 삼투압 작용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용은 유리나 유약을 바른 도자기 등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현상이다. 유리 항아리보다 옹기로 만든 화병이나 어항에서 꽃과 물고기가 훨씬 오래 살아 있었다는 실험 결과도 보고된 바 있다.

 

옹기가 이처럼 숨을 쉬는원리는 옹기를 만드는 바탕 재료에 있다. 옹기의 재료인 진흙은 질은 밥 같은약한 흙인 찰흙과, 돌과 모래 성분의 센 흙을 섞어서 만든다. 이렇게 만든 진흙으로 옹기를 구우면 약한 흙은 그릇이 되고 센 흙은 기벽에 미세한 기공을 형성한다. 그 기공 사이로 공기가 통하며 산소를 공급하고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는 발효 과학이 탄생하는 것이다. 또한 가마 속에서 나무가 탈 때 생기는 탄소와 연기가 옹기들을 휘감아서 검댕을 입혀 방부 작용을 한다.

 

이렇듯 효능이 신통방통한 옹기는 재료와 공정이 자연에 가장 가까운 그릇으로 인체에 무해, 무독할 뿐 아니라 견고해서 100여 년부터 수천 년까지 대물리며 사용할 수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처럼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는 옹기가 금이 가거나 파손되면 풍화작용에 의해 그릇의 형태를 버리고 재빨리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한반도 곳곳에서 백자나 청자의 유물이 발견된 사례는 빈번하나 옹기 유물을 찾기 힘든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일반적인 도자기와 달리 옹기는 유약이 토화 현상을 더욱 가속화한다는 것 또한 신비롭다. 이는 옹기는 유약마저도 화학 성분이 아닌 자연 성분(약토와 재를 섞어 만듦)을 사용해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19세기 말엽 광명단(光明丹)이라는 약품이 신문명을 타고 들어왔다. 이 광명단을 유약으로 입혀 구우면 항아리가 붉은색이 나고 유난히 광택이 좋았다. 곧 사람들은 번쩍번쩍 광이 나는 광명단 옹기만 찾았고 투박한 전통 옹기는 차츰 소멸되어 갔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고 있거나, 이미 구입해서 일반 가정의 장독대에 놓여 있는 옹기는 대부분 광명단 옹기다. 그러나 광명단 유약은 납이 주성분인 화공 약품인 데다 산과 열에 약한 성질이 있으므로 김치를 담거나 불에 올려놓으면 납 성분이 음식으로 흘러 들어가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지금 집에서 사용하고 있는 항아리가 투박하면서도 은은한 광채가 아닌 거울처럼 반지르르한 광이 흐르고 있다면 광명단 옹기가 아닌지 의심해 볼 일이다.

또 하나 주의해야 할 것은 가스불이나 기름불을 때서 만든 옹기다. 전통 가마는 비용과 관리가 만만치 않아 1980년대 이후 가스불이나 기름불로 구운 옹기가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이렇게 단시간에 구워낸 옹기는 대개 얇고, 기온의 변화에 민감해서 지나치게 춥거나 더우면 깨져버리고 만다. 가마 옹기와 가스 옹기를 구별하는 방법은 항아리의 뚜껑이나 바닥, 그리고 색을 살펴보면 된다. 가마에 구운 옹기는 불길에 따라 각 부분의 색이 짙거나 옅은 등 일정하지 않고, 뚜껑이나 바닥에 모래 알갱이가 튀어 맺혀 있다. 가스불로 구운 옹기는 항아리가 색이 전체적으로 일정하고 모래 알갱이가 거의 없다.

 

6대째 옹기장이, 오부자옹기 김일만 옹기장

 

여주군 금사면 궁리 오부자옹기김일만(金一萬, 72) 옹기장은, 6200여 년을 이어온 옹기 가문의 대를 잇는 한편 수천 년 동안 전승돼 온 전통옹기 제작기술의 원형과 맥을 지켜오고 있다. 그는 부친 김운용과 조부 김대득에게서 전통적인 옹기제작 기법을 전수받아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장인정신으로 오직 옹기제작에만 전념하고 있는 옹기장이다.

 

원래 옹기 일은 조선후기에 가톨릭이 전래되면서 가톨릭신자들이 박해를 피해서 했던 일이다. 그래서 김일만 집안이나 그의 어머니 서씨 집안 역시 모두 가톨릭을 신앙하는 집이다. 관원들과 이웃의 감시에 시달리던 당시의 천주교 신자들이 택할 수 있던 일은 옹기장이 일이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마을과 떨어진 외진 곳에서 숨어서 살 수 있었고, 지게에 올린 독그릇 속에 성경을 넣고 그때그때 나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일만은 1993년 한국민속촌 옹기 기획전을 개최한 것을 비롯, 1996년 전국 공예품경진대회에 특선 및 입선을 수상하였고, 같은 해 국가지정 옹기분야 기능 전승자로 선정되었다.

 

또한 1998년 한·일 교류 400주년 기념 한·일 옹기 특별기획전을 열었으며, 2000년에는 경기으뜸이로 선정되어 활발하게 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의 4명의 아들(장남 김성호, 차남 김정호, 삼남 김창호, 막내 김용호)들도 함께 작업장을 운영해 나가고 있으며 항아리·투가리·옹기그릇·시루 등 다양한 종류의 옹기류를 제작하고 있다. 그는 옹기제작을 누대에 걸쳐 가업으로 이어 오면서, 전통적인 옹기제작 방법과 소성방법을 이어 가고 있는 옹기장으로서 그 기능을 인정받아 20021125일 경기도 지정 무형문화재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7호로 지정되었고, 2010211일에는 국가에서 지정하는 중요무형문화재 96호로 선정되었다.

 

옹기는 흙과 불의 호흡,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들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산 아래 마을에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옹기장 김일만의 가마터가 있다. 이른 아침부터 옹기를 들고 나르고 분주히 움직이는 반백의 노인. 화려한 기교는 없지만 소박한 멋을 가진 김일만의 옹기는 중부지방 전통의 형태를 그대로 잇는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옹기장은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일 앞에 몸을 사리는 법이 없다.

 

옹기 만든 지는 한 50년 돼 가요. 옹기는 바로 배워서 만드는 사람이 있고 처음서부터 과정을 거쳐서 온 사람이 있고 그래요. 다 달라요. 나는 맨 밑바닥서부터 올라 왔어요. 건아, 쌩질, 수비 다 거쳐서 올라왔어요. 이건 노가다보다 더한 거야. 그래서 옛날부터 옹기장이들을 상놈이라고, 촌사람이라고 상대를 안 한 거야.”

열다섯 살 때 아버지를 따라 옹기 일을 시작했다. 지금은 김일만 옹기장의 일가가 나서서 일을 한다. 어릴 때부터 옹기장을 도왔던 네 아들은 모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옹기를 업으로 삼았다. 하지만 가마터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에게도 여전히 옹기 일은 매 단계 단계가 어렵고 고되다고 한다.

 

가마 작업하는 게 최고 힘들어요. 일 년에 한 네 번 정도 하는데…….”

석 달 동안 때를 기다려온 옹기들을 가마에 넣는 일.

옹기는 흙에서 시작된다. 메질과 깨끼질을 반복해서 찰진 흙을 준비하고 발 물레를 돌리면서 흙가래를 차례로 올리고 모양을 잡아 옹기를 빚는다. 볕과 바람에 잘 말린 옹기는 약토와 재를 섞어 숙성시킨 잿물을 입히고 다시 건조한다. 그리고 마지막 가마 작업까지 거쳐야 옹기 하나가 완성된다.

 

다섯 말짜리 큰 옹기들은 한 달 전부터 가마 안에서 말리는데 전통 가마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과정이라고 한다. 다림불이라고 해서 한 달 전부터 빈 가마에 불을 때 놓는 것이다. 그러면 가마가 열을 온열식으로 갖고 있게 되는데, 이 열을 싹 가두어서 황토에서 나오는 은은한 열로 서서히 옹기들을 말린다고 한다.

 

조선시대 말에 지어졌다는 가마는 전통의 형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 가마는 흙벽돌로 지은 25미터, 반원형 원통 모양으로 완만한 경사가 있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100년이 넘게 자리를 지켜온 가마처럼, 김일만 옹기장과 그 아들들은 전통 옹기의 역사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옹기 하나에 온 식구가 매달려 한 몸처럼 움직이면서. 김일만 옹기장은 7대째 대를 이어 옹기를 빚어왔다. 이제 그 아들과 손자까지, 9대째 옹기를 빚는 집안……. 네 명의 아들까지 옹기를 빚는다고 오부자 옹기라는 이름을 얻었다.

 

우리는 돈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 되는 거여. 우리 애들이 안하면 다른 사람을 둬야 되니까. 다른 사람을 둘 돈이 없으니까 해야 돼요. 그래서 애들이 아침에 갈 적에 일해 놓고 가고 갔다 와서 일하고 해요. 그러니까 공부는 별로지. 옹기는 신경 많이 쓰는 거야.”

철들기 전부터 가마터에서 일을 익혀야 했던 아들들은 옹기가 싫다고 도망도 다녔지만, 다시 아버지 곁으로 돌아왔다.

 

옹기를 만드는 일은 그야말로 준비의 연속이다. 불을 땔 나무는 말할 것도 없다. 벌써 2~3년 전에 사들여서 바싹 말려둔 것들이다. 습기가 없이 바싹 마른 나무는 옹기장이에겐 흙만큼 중요한 재산이다. 나무를 옮기고 난 자리, 옹기장이 떨어진 나무껍질들을 긁어모은다.

땅에 떨어진 거 다 주워 담았어.”

콩도,나무껍질 하나도 버리지 않는 알뜰함은, 가난한 옹기장이로 오남매의 아비로 살아온 세월, 몸에 밴 습관이다.

 

옹기장이는 전통 방법 그대로, 물레에 앉아 옹기를 빚는다. 첫 단계는 바닥 만들기다. 방망이로 두드려서편평한 원반 모양의 바닥을 만든 후, 그 위에 흙가래를 얹고 바닥과 몸통을 이어준다. 차례로 흙가래를 더 얹어서 이어 붙이는 것을 타림이라고 하는데 이때 물레를 돌리는 속도도 호흡이 맞아야 한다. 그다음 옹기 벽면을 안팎으로 두드리는 수레질과 선을 다듬는 근개질을 번갈아 한다. 수레질을 통해서 흙을 늘려 형태를 잡고 근개질로는 매끄럽게 모양을 다듬는다. 마지막으로 손잡이인 귀를 붙이면 중부 지방 전통의 옹기가 완성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 당시에는 자기가 한 대로 돈을 먹기 때문에 쉴 새도 없었어요. 우리는 식구도 많고 애들도 많고 그렇기 때문에 한 개라도 더 해야 돼. 돈벌이가 돼야 되니까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한테 미움 많이 받은 거야. 자기네 쉬는데 일을 하니까는.”

동료들이 술 한 잔으로 노동의 피로를 달랠 때도, 옹기장은 물레 앞을 지켜야했다. 그렇게 묵묵히 한 길만을 걸어왔다.

다른 건 할 줄도 모르고…… 대단하시죠. 힘들 때도 많았고 그런데 항상 이 길을 지켜 나간다는 게. 제가 아들이지만 진짜 존경스럽죠. 그 수많은 유혹 같은 것도 많았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도 이 길만 하시니까 대단하신 것 같아요.”

아들이 보아도 아버지의 삶이 그렇다. 범인으로서 우리가 보아도 그러하다.

아버지는 아버지라지만, 이 어려운 길을 눈으로 보고서도 선택한 아들은 어떤 마음에서 시작한 걸까.

 

저는 고등학교 다닐 때 아이고시커먼 것만 보면 지겨웠으니까. 가출도 했고. 가출을 제가 가장 많이 했을 걸요. 네 번인가 했으니까. 하다가 도저히 답도 안 나오잖아. 95년인가 6년에 제가 재수가 좋게 말입니다 미국에 갔었어요. 거기 가서 강당에 가서 옹기를 하나 떡 만들어놨더니 그 사람들 사진 찍고, 조그만 애들도 와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냥 저한테는 충격이었어요, 충격. 진짜 충격이었어요.”

분명 가난이고, 막힌 길이었다. 그런데 보잘것없다고 생각했던 그 옹기에 이방인들은 감탄과 찬사를 쏟아냈다. 그들의 눈빛을 잊을 수 없었고, 창호 씨의 시선도 달라졌다. 우리 옹기 속에 깃든 아름다움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동안 보고도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단다.

 

아버지가 늘상 강조하시는 것은, 성실함. 다른 거 필요없어. 재능? 필요없어, 성실. 본인 철학이 그거예요, 내가 쉬고 있어도 이 순간 옹기는 마른다, 니가 벌써 움직이고 다른 생각해도 옹기는 마르고 있다, 명언이었어요. 저도 이제는 어디 가기가 무서워 옹기가 마르고 있으니까.“

 

아들의 말처럼, 옹기장이 김일만 선생은 뼛속까지 옹기장이인지 모른다. 본인이 계속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전시회도 한 번 가져보지 않았다는데……. ‘옛날 어르신들에 비하면 본인은 아직 개밥그릇 만드는 수준밖에 안 된다고 하면서 백 번, 천 번, 무한히 되풀이하는...

한국의 유산 김은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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