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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삿갓 노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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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細竹] 삿갓이란

세대 삿갓(방립장)은 대오리를 엮어 만든 우산같은 모양으로 얼굴을 가리거나 햇빛이나 비를 막기 위해 사용 된 쓰개이다. 기원은 고려 때의 승려 혜심이 편찬한(선문염송)에 나오는데 당대의 승려 황벽희문의 삿갓을 쓴 화두의 일화에서 유래한다.

 

상을 당한 상주가 밖을 나갈 때 쓰던 방립은 대오리를 가늘게 엮어서 네 귀는 우묵하게 패이고, 밖은 둥그스름하게 방립은 큰 모양으로 제작하였으며, 관인은 흑초 방립을, 서리는 백방립을, 착용하였고, 농립, 우립, 야립 등으로 구분된다.

 

세대 삿갓은 일반 삿갓에 비해 날대의 수가 많고 날대 사이로 엮이는 엮음대가 가늘어 정교하다.

대나무의 찬 성질을 이용한 죽세공품인 세대 삿갓은 여름을 시원하게 지내기 위한 우리 선조들의 과학슬기가 담겨 있을 뿐 아니라 대나무를 다루는 세밀한 솜씨를 엿볼 수 있다.

 

열 살 때부터 삿갓 만드는 일 거들어

 

전라남도 담양이 고향인 세대삿갓 기능 전승자 월죽 노순걸 씨(68)에게 어려서부터 보고 듣고 만지고 한 대나무()’는 생활의 일부분이었다. 조부 노성령 때부터 부친 노금동을 걸쳐 지금의 노순걸 명인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셋대 삿갓 전통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국내 유일한 기능인이다. 그런 탓일까, 그는 40년 넘게 해온 삿갓 만드는 일을 천직이라고 말한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집안 어른들의 삿갓 만드는 일을 거들었어요. 옛날에는 대부분 농가에서 삿갓을 만들어 사용했으니까요. 하나둘씩 잔일을 돕다 보니 제법 한다는 소리를 들었죠.”

그의 말처럼 삿갓은 예로부터 갈대나 대오리로 거칠게 엮어 비나 볕을 가리는 데 쓰는 일상도구 중의 하나였다. 노립, 사립, 두봉이라고도 불리는 세대 삿갓은 원료가 흔해 값이 싸고 만들기도 어렵지 않아 대개 농부들이 많이 사용해 농립(農笠)이라고도 했다. 헌에 의하면 조선시대 말기부터 담양이 명산지로 알려져 있으나 오늘날에는 플라스틱 제품과 값싼 중국산에 밀려 전통 죽세공품인 세대 삿갓의 명맥을 유지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먹고 살려고 본격적으로 삿갓 만들어

 

세대 삿갓의 재료로는 단단하고 마디가 곧으며 질이 좋은 3년 이상 된 솜죽(분죽)을 쓰는데, 갈라짐을 방지하기 위해 건조시키지 않은 생대를 사용한다. 보다 고급스런 빛깔을 내기 위해 겉껍질을 벗겨내고 남은 겉대를 주재료로 쓴다. 세대 삿갓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제작과정이 손으로 이뤄진다.

담양에서 나는 질 좋은 대를 찾아 그것을 벗겨내고 또, 벗겨내는 작업을 반복한다. 대나무를 절단하지 않고 수차례의 칼질로 머리카락 정도의 일정한 굵기로 쪼개는 정밀한 손재주가 핵심. 매끄러운 원죽대나무를 칼로 쪼개고, 쪼갠 것을 사용 목적에 따라 구분하여 다시 쪼갠다. 원대는 가장 기본적인 대오리이자 끼움대로 손으로 가늘게 쪼갠 것을 다시, 조름틀에 넣고, 실처럼 가늘고 일정하게 잡아 뺀다. 모심대는 마치 베를 짤 때의 날실과 같은 역할을 한다. 꼭지부터 뾰족하게 엮어 만든 삿갓은 얼굴을 가릴 만한 정도에서 가장 자리를 도련하고 안에 미사리를 넣어 머리에 고정시킨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하나의 제품을 완성하는 데 숙련자도 하루 2개 정도밖에 만들 수 없을 정도로 세밀함과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군 제대 후 먹고살기 위해본격적으로 삿갓 만드는 일에 뛰어들었다는 노순걸 씨.

사실 처음에는 별다른 기술은 없고 먹고는 살아야겠고 해서 삿갓 일을 시작했죠. 농사를 지어보기도 했지만 제게는 삿갓 만드는 일이 좋더군요. 결국 51녀 형제 가운데 저만 유일하게 삿갓과 인연을 맺게 됐죠.”

 

죽는 날까지 삿갓 만들고 싶어

 

그렇게 시작한 삿갓 일이 강산이 네 번은 변할 정도의 세월이 쌓이면서 천직이 됐다. 그동안 그는 세대 삿갓의 전통을 잇는 한편 시장조사와 삿갓에 대한 의장등록 신청 등을 통해 제품의 고급화로 경쟁력과 대중성을 갖는 데도 주력해 왔다. 그러나 이 일을 천직이라고 생각하는 그 역시 질 낮고 값싼 중국제품에 밀려 진품이 사장되는 상황에 이르자 답답한 심경을 감추지 않는다.

 

수입도 적고 생활도 어려우니 배우려는 사람이 없는 게 당연합니다. 좋은 시절도 있었지만 생활의 편리함이 결국 전통을 밀어낸 꼴이 되어버렸죠. 저 역시 제 자식부터 가르치고 싶지 않은데... 그래도 자식이 배우겠다고 나서니 흐뭇하기는 합니다.”

그는 세대삿갓 외에도 죽세공에 대한 연구를 통해 다양한 용도의 죽세공품을 개발해 공예품경진대회, 죽제품경진대회 등 각종 공모전에 출품해 여러 차례 입상함으로써 제품성도 인정받았다. 몇 년 전부터는 대나무박물관 내 매장을 통해 판로를 확보하면서 진품의 명맥을 이을 수 있는 길도 열렸다.

 

2003년에 기능 전승자 지정되어 그동안 자신이 해온 일에 대해 긍지와 보람을 크게 느꼈다고 한다. 세대 삿갓은 환경친화적 상품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전통을 널리 알릴 수 있는 독특한 문화상품으로서의 가치도 크다고 강조한다.

죽는 날까지 삿갓 만드는 일을 하고 싶죠. 다른 일은 없습니다. 이 일이 천직이니까요. 지금은 자식에게도 물려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대나무의 고장 전남 담양군이 대나무공예의 맥을 잇고 계승과 발전을 위해 대나무 공예 명인과 준명인을 지정 운영키로 했을 때도 뿌듯했다. 방립장 노순걸 명인은, 5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 대나무 공예의 맥을 잇고 위한 작품제작과 계승자 전수 활동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결과가 2012년에 있었던 일반인 대상 교육이다. 전통 대나무공예의 맥을 잇고 대중화를 위해 대나무공예 전수교육에 나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교육은 퇴직자와 노인, 부녀자 등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노순걸 명인은 강사로 나서, 대나무 공예의 기본인 대뜨기기본엮음과정을 거쳐 소쿠리와 시장바구니, 말석, 삿갓 등 다양한 죽공예 제작 교육을 했다. 2015년에 열릴 담양 세계 대나무 엑스포를 위해 다양한 죽공예품을 개발, 이들 전수교육 이수자들을 죽공예 전문가로 육성한다고 한다.

한국의 유산 김은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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