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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2 (화)
2012 - 2018 『한국의 유산』발굴ㆍ조사 사업
  • 소목장 조석진

    소목장 조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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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목장 조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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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진 명인은 1975년 우리나라 최초로 스페인 국제기능올림픽 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을 시작으로 1988년 목재분야 명장 1호로, 1998년에는 무형문화재로 지정 받았다. 조명인은 느티나무 판재를 좌우 대칭으로 배치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작품을 만들고 있다. 조 명인의 작품은 삼층장, , 문갑, 흑단상감좌경대 등 전승가구를 제작하고 있다. 조명인은 1953년 전북 완주군 용진면 부평에서 태어났으며, 9살 때 친구들과 함께 놀다가 폭발물 사고로 중상을 당했다. 조 명인은 아버지 등에 업혀서 용봉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조명인은 가정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은 포기하고,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의 권유로 전통가구 소목 일을 배우기로 시작했다. 19662월 전주의 안은성 씨의 문하생으로 입문하였으나, 1년 동안은 심부름과 청소, 잡일만 하였다. 1년이 지나 공구 잡는 법, 제작기법 등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조명장은 6년의 도제생활이 끝났고, 그는 안은성 선생의 유일한 제자가 되었다.

도제 생활 마감 후 1972년 제2회 전라북도 기능경기대회에서 1, 1973년 전국기능올림픽 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 이 대회 우승으로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1975년 스페인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 대회에서 22살의 나이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조명인은 사회적인 명성은 얻었으나 집안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조명인은 다시 가구 공장에서 일했으나 이것도 잠시뿐이었다. 그는 결혼을 했고, 다행히 현모양처를 얻어 마음은 편했다.

조명인은 전통공예기술을 버리지 못하고 장인 정신으로 살았다. 조명인은 어려운 농촌 마을을 대상으로 농촌봉사활동, 이리공고 학생들 지도, 군산교도소 등에서 재능을 기부하고 있다.

조석진명장은 목재수장 명장으로, 동탑산업훈장, 국제기능올림픽 대회 심사위원, 전주시민의장 문화장 수상,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목가구 소목장 19호로 지정되었다. 지식기부기관 한국지식재산관리심사위원회는 미래의 동량인 청소년들의 직업진로체험학습을 대한민국 명장회와 함께하며, HIINOUT이 후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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