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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흔 제과제빵 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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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흔 제과제빵 명장은 마인츠돔과자점의 대표로, 비피더스 유산균 액을 듬뿍 넣은 최고의 건강빵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의 빵은 맛과 영양에 있어서 소비자의 건강과 입맛을 생각 하고 만들고 있는 살아있는 제과제빵계의 전설이다. 이러한 홍 명장의 철학은 소비자의 입장에서 건강하고 맛있는 빵을 만들겠다는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홍 명장은 충북 진천에서 출생하여 아들 다섯의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 적인 초등학교 6학년 때 돌아가셔 집안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이렇게 어려웠기 때문에 고등학교 2학년 중퇴하였다. 그는 서울로 상경하여 제과제빵기술자였던 둘째 형을 따라 제과제빵의 길로 들어섰다. 그가 처음 배운 곳은 경복궁 옆 백장미제과였다. 이렇게 시작한 제빵사의 길은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인생의 생존전략으로서 잘한 선택이 되었다.

 

그리고 나폴레옹제과점에서 수련을 하였고, 그곳에서 6년가량 근무했다. 1985년에 공수부대를 다녀온 후 다시 나폴레옹제과점으로 복귀했다. 1989년 강동구 명일동의 홍종식과자점으로 옮겨 자신만의 빵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제과점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맛밖에는 없었기 때문에 그는 맛있는 빵 개발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프리미엄 베이커리를 선택하였고, 그 선택은 주효했다. 마인츠돔 베이커리는 23개의 가맹점을 보유하였다. 제과제빵 하나로 승부를 걸고 지금까지 연구개발을 게을리 하지 않은 탓이 컸다. 어렵기 때문에 살아야 했고, 그 어려움의 극복은 기술과 철학이 있어야 가능했다. 1981년 이래로 지금까지 오직 제과제빵 한길만을 걸었다. 그리고 그는 더욱 맛있는 빵을 개발하기 위하여 독일과 프랑스로 연수를 떠나 고급 제빵 기술을 배웠다. 그는 기술자가 철학이 없다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최고의 재료를 이용한 최고의 건강하고 맛있는 빵인 마인츠돔 베이커리를 열었던 것이다. 그는 제과점 운영뿐만 아니라 자신도 적극적으로 국내외의 경연대회에 참석하여 우수한 성적을 올렸다. 홍 명장은 빵종류 뿐만 아니라 초콜릿 같은 것을 가지고 경연대회에서 참여하여 우수한 성적을 올리기도 하였다. 앞으로 그는 제과제빵 직업훈련원을 설립해 후학을 양성하는 것이 새로운 목표가 되었다.

향후 그는 다시 제과제빵사로 돌아가 소박하게 자신만의 최고의 빵을 만들겠다고 한다.

그는 일본 동경제과학교와 독일 바인하임 분데스팍스쿨 국립제과학교를 수료하였다. 그는 국내 농산물을 활용한 신제품 개발, 신소재 개발 및 보급, 자영제과점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냉동제빵법 실용화 성공, 무지방, 저지방 제품개발 및 상용화 성공, 자영제과점 설비 구축 및 자영제과점 현실에 맞는 설비 개발로 특허등록, 설탕공예 기법 집대성 및 체계화, 대중화 홍보, 다양한 제과, 제빵서 저술, 자영제과점의 기술 사장을 막기 위한 다양한 매뉴얼 개발, 2007년 세계 제빵월드컵 유럽예선 국제심사위원, 2008년 세계 제과월드컵 본선 국제심사위원을 역임하였다. 수상내역으로는 서울국제제과제빵전람회 금상, 서울국제빵, 과자 경영대회 금, 미국 라스베이거스 월드챔피언쉽 개인 1, 프랑스 제과월드컵 국가대표 선발전 1, 프랑스 리옹 월드페이스트리컵 국제대회에서 설탕공예부문 특별상 등을 수상하였다. 지식기부기관 한국지식재산관리심사위원회는 미래의 동량인 청소년들의 직업진로체험학습을 대한민국 명장회와 함께하며, HIINOUT이 후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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